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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1.문학-서울大 불문과출신 文人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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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최근 문화현상이 날로 복잡다양해지고 있다.문화의 흡족한 향유와 탐색을 위해선 별도의「도구」가 필요해졌다.낯선 지형에 꼭 필요한 것은「지도」.중앙일보는 장기기획으로「문화지도」를 작성키로 했다.이 작업은 국내외 문화활동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 이뤄질 예정이다.처음으로 시도되는 「문화지도」작성에 독자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편집자註] 더 일찍 더 요란한 평단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라는게 상당수 문인들의 분석이다.
서울대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평단에서 그나마 모교출신 비평가도 없는 탓에 주목과 평가가 늦어졌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동문의 작품활동에 더 큰 애정이 가는 현실을 감안할 때 문단에서의 학맥은 평가 기회와 높이에 일정수준 영향을 미치는 것이사실이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 문인들〉 「첨단이론과 정치한 분석,섬세하고 세련된 문체,실험적 기법으로 무장된 소수 정예의 문학 엘리트.」 서울대 불문과 출신 문인들을 바라보는 문단의 대체적인평가다. 서구 지성의 흐름을 선도하는 프랑스의 문학.철학이론을전공하고 이를 문학활동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문과 출신 문인은 비평가가 주류를 이루며 숫자에 비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비평계에서의 학맥은 1세대의 김붕구(작고)-정명환,2세대의 김현(작고)-김치수-곽광수-김화영,2.5세대 오생근,3세대의 권오룡-진형준-정과리,4세대의 박철화로 이어진다.
50년대부터 활약한 김붕구.정명환(66)은 일본어를 통한 서구문화 수입을 벗어나 불어를 통해 직접 외국문학을 수용한 첫 세대다. 김붕구는『보들레르 평전』등으로 한국문학의 감수성 개발에 기초를 제공했으며 『작가와 사회』라는 책으로 순수.참여 논쟁에 불을 붙인 주인공이다.
사르트르를 전공한 정명환은 이상(李箱)론인『부정과 생성』을 통해 주제비평의 전범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1세대에 의해 뿌려진 비평의 씨는 2세대인 김현(서울대).김치수(56.이화여대).곽광수(56.서울대 불어교육과).김화영(55.고려대)교수에 의해 활짝 피어나게 된다.
한글을 배우고 자란 첫 세대로서 4.19세대로 불리는 이들은60년대에 비평을 시작,70~80년대를 풍미한 바 있다.
특히 김현은 70~80년대 전반에 걸쳐 독보적인 지위와 영향력을 누렸으며 이는 그가 90년 48세로 작고했을 때 조문객이1,000명을 훨씬 넘었던 사실로도 잘 나타난다.
김현은 김치수.김병익(서울대 정치학과 출신),김주연(同 독문과)과 함께 70년 『문학과 지성(文知)』을 창간했으며 그 후배인 오생근(50.서울대)교수도 뒤이어 합류해 문지1세대를 구성한다. 비판적 자유지성을 근간으로 한 『문학과 지성』파는 「문지교실」이라 불리며 『창작과 비평』과 함께 문단의 양대산맥을형성했다.
이 잡지는 80년 강제폐간후 88년 복간되면서 『문학과 사회』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도 가장 영향이 큰 문학잡지로 자리잡고 있다.
김현은 70년대에 정신분석과 실존주의를 비평의 두 축으로 삼았으며 곽광수와 함께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을 국내에 확산시켰다. 그는 80년대 들어 미셸 푸코.르네 지라르의 첨단 이론을자기화했고 이 또한 당대의 유행사조가 됐다.
김치수는 70년대에 롤랑 바르트의 구조주의 비평,80년대부터는 기호학의 수용에 남다른 역할을 했고 현재도 한국기호학회장을맡고 있다.
김화영은 좋은 번역과 감성이 뛰어난 산문으로 두드러졌다.
김현은 첨단 이론과 씨름을 벌인 끝에 자기식으로 흡수하는 사색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그는 또 작가의 사유의 뿌리를 집어내면서 이론에 의한 재단보다 작품자체에 감성적으로 공명하는 「공감의 비평」으로 이름 높았다. 외국이론의 한국적 흡수와 「공감의 비평」은 그 이후 불문과 출신 비평가들의 대부분이 계승하는 전통이 된다.
오생근은 폭넓은 이론과 정교한 분석으로 손꼽히며 두세대의 중간인 2.5세대로 분류된다.
불문과 3세대는 79년 나란히 등단한 정과리(38.충남대).
권오룡(44.교원대 불어교육과)과 83년에 데뷔한 진형준(44.홍익대)이 대표주자로 모두 『문학과 사회』편집동인이었다.
그러나 진형준은 91년 서울대 불문과 출신으로 유일하게 『문학과 사회』와 결별,이후 대중문학론을 주창하는 계간 『상상』동인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진형준은 신비주의적 상상력 이론을 다룬 신화비평가 질베르 뒤랑을 전범으로 삼는 독자노선을 걸어왔다.
정과리는 80년대 초기 네오 마르크시즘과 구조주의의 융합에 노력했고 후기에는 데리다.라캉.가타리.들뢰즈.보드리야르 등의 최신 사조를 종합,자기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면서 활발한 평론활동을 벌여왔다.
권오룡은 바흐친의 대화적 상상력이론을 주축으로 기호학과 구조주의,정신분석 이론을 두루 섭렵한 바탕위에서 활발한 비평을 해왔으나 근래 박사학위 준비관계로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작가로는 2세대인 김승옥(55.62년 등단),3세대인 소설가이인성(43.서울대 교수.80년 등단),최수철(38.81년 등단),시인 이성복(44.계명대 교수.77년 등단)이 손꼽힌다.
이들 역시 시대적 감수성이나 실험정신 등에서 첨단을 달리는 점이 공통된다.
김승옥은 명징하고 아름다운 언어,번뜩이는 감수성으로 60~70년대를 풍미했으나 80년 이후 절필했다가 지난해 집필 재개를선언했다.
3세대인 이인성과 최수철은 한국소설의 전통인 리얼리즘 계열을벗어난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이름높다.
이들은 언어와 현실의 불일치 문제에 대한 추구,복잡한 사유를바탕으로 한 복잡한 구문,전통적인 서사구조의 무시 등으로 평단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왔다.
시인 이성복 역시 상상력과 언어실험을 중시하는 해체시 1세대로 이름 높았으나 90년 이래 형식실험을 그치고 전통적 시작법으로 돌아갔다.
소설가로는 이외에도 단국대에 적을 둔 정소성(52),평론가면서 지난해에 장편 『청동입술』을 처음 펴낸 김운비(37)등이 있다. 제4세대로는 89년 등단한 평론가 박철화(31.프랑스 유학중)와 90년대 등단한 김태동(31).성기완(30)등 시인2명에 그친다.
서울대 불문과는 90년 김현 작고후 문학활동보다 학문 연구에몰두하는 분위기가 지배해 신진 문인의 등장은 앞으로도 어려울 전망이다.
90년대부터는 서울대 국문과 출신이 대거 등장해 평론계를 석권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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