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空轉시킨 선거구 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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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거를 가까이 두고 선거구를 조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야가 이 문제로 임시국회를 첫날부터 공전시킨 것은 딱한일이다.이번 선거구조정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있은후 최대선거구와 최소선거구간의 인구편차를 4대1 정도로나 마 줄여보자는것이 취지다.
선거구 인구의 하한(下限)과 상한(上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정당간에,의원 개개인간에 이해(利害)가 엇갈리는 것은 불가피하다.우리가 보기에도 각 정당의 주장이 모두 자기에겐 유리하고 상대방엔 불리한 내용이기 때문에 어느 쪽도 일방적인 양보를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서로 타협하는 방법밖에 없다.선거를 불과 석달 앞두고 기준과 원칙을 살리는 대대적 선거구 재획정을 할 수도 없는만큼 여야가 함께 일정한 양보로 타협하여 최소한의 조정을 하는수밖에 없을 것이다.여당에서는 협상이 안되면 내 주에 표결로 강행할 뜻을 비추고 있으나 선거법을 표결로 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선거법이란 게임 룰인데 한쪽의 뜻에 의한 룰로 게임을 한다는 것은 불공정하기 때문이다.또 지금껏 표결로 선거법을 개정한 일도 없었다.
우리는 진전없는 선거구협상을 보면서 여야가 의석 몇개의 문제로 정치권의 수준에 대해 국민에게 또 한번 실망을 안겨주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비자금사건으로 정치인의 청렴.도덕성이 땅에 떨어진데다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면서도 자기들의 이 해가 걸린 문제에서는 악착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과연 국민에게 어떻게 보일까.늘 대국(大局)을 보라고 하고,일류국가를 만들자고 하면서도 몇몇 선거구의 유.불리(有.不利)문제로 국회를 마냥 공전시킨다면 또 한번 겉다르고 속다르다는 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지심사숙고하기 바란다.일류국가를 만들자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문제로 이렇게 오래 시비를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선거구조정은 결국 미봉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고 본다.여야는 서로 한걸음씩 양보해 이번 선거를 치르고,장기적으로 선거구제도 자체와 전면적인 선거구재획정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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