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한국 미소가 전쟁 상처 녹였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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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와 영화가 유명한 나라로만 알고 있었는데 와보니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를 보고 미소지어 준 한국인들이 가장 아름다웠어요."

지난 6일 벌어진 MBC 초청 한-이라크 친선 축구 경기가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는 이라크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이라크에 파병될 자이툰 부대의 열렬한 응원과 격려 속에 펼쳐진 이날 경기는 이라크 전역에 생중계됐다.

위성 생중계를 위해 경기 이틀 전 입국한 이라크의 알이라카야 방송팀은 7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비록 스코어는 1-0으로 한국에 졌지만 양국 사이의 깊은 유대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TV가 있는 집은 모두 이번 경기를 시청했을 만큼 이라크 현지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이라크에서는 2002년 월드컵 예선전 이후 처음으로 생중계된 축구경기라 대단한 열기를 모았다고 한다.

알이라카야 방송사는 미국과의 전쟁 이후에 설립돼 현재 이라크에서 유일하게 전국을 커버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 온 방송팀은 뉴스 캐스터인 피안 파에크 야콥(27.(右))과 기자 후세인 바데아 카자르(31.(左)),카메라맨 아소 타엑 아가잔(23) 등 모두 네 명이다.

MBC는 이번 친선 경기를 이라크인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현지 방송인 초청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난관의 연속이었다. 아직 준(準) 전시 상황이라 여권을 낼 수 없었고, 테러국으로 낙인 찍혀 이라크인이 다른 나라를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바그다드 주재 한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우리 외교관이 바그다드에서 요르단 암만까지 12시간 동안 자동차로 동행해 국경에서 이들의 신원을 보증한 다음 한국 직항편이 있는 카타르 도하 행 비행기에 태우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같은 경로를 밟아 8일 이라크로 돌아가는 이들은 바그다드에서 서울까지 편도 30시간에 걸친 긴 여정과 4박5일 동안의 한국 체류기를 담아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예정이다.이들은 "한국은 천국"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우며 연신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전쟁의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의 아픔과 그늘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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