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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호황업체 자금사정 새 풍속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고개숙인 은행」「고개 쳐드는 호황 대기업」.
지금은 일부 대기업들에 국한된 것이지만 기업과 은행간의 뒤바뀐 모습이다.뻣뻣하기만 했던 은행들이 요즘에는 대기업들에 허리를 점점 굽히고 있다.서민이나 중소기업들,그리고 여전히 돈이 부족한 많은 기업들에는 꿈 같은 얘기다.그러나 반 도체.자동차등 굴지의 수출호황업체들은 『시중은행 돈 필요없다』며 외면하는현상이 최근들어 더욱 뚜렷해지는 추세다.
오히려 은행은 이들에 돈을 못빌려 주어서 안달이 날 정도다.
은행이 돈 갖다쓰라고 기업들을 찾아다니면서 두가지 새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담보대출관행이 바뀌었다.
은행이 대출세일을 할 때 웬만한 상장기업들에는 요즘 담보를 묻지않는다.담보없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해도 잘 빌려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꺾기」가 크게 줄었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임원은 『요즘도 꺾기를 하기는 한다.예대마진을 챙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출자원 마련을 위해 기업들 눈치를 보아가며 사정사정해서 조금씩 하는 정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된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 수출호황기업이 요즘 돈을많이 벌어들였기 때문이다.시중은행 돈보다도 훨씬 더 싸고 편하게 돈 빌리거나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대형기업에 요즘 가장 인기가 떨어진 은행돈은 운전자금용인 당좌차월(일명 기업의 마이너스통장).굳이 비싼 금리를 내가면서 이돈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한동안 이 돈의대출한도 늘리기 로비경쟁을 했던 것과는 영 딴판 이다.
삼성전자가 시중은행권으로부터 언제든지 가져다 쓸수 있는 당좌차월한도는 3,400억원정도.삼성전자는 이 돈을 6개월넘게 1원 한푼 안쓰고 있다.오히려 운전자금으로 빌렸던 단기성 빚도 최근 몽땅 다 갚아버렸다.저리의 장기성 시설자금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같이 유사한 현상은 현대전자.현대자동차.LG반도체.
포철등 굴지의 간판급 수출호황업체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이들 기업의 시중은행권 당좌차월한도는 각각 1,000억~3,000억원 안팎.이중 자기한도의 30~40%정도만 꺼 내 쓰고 있다.선경.기아.동양그룹등도 이 비율을 갈수록 더 줄이고있다. 은행마다 돈이 남아도는 것도 이때문이다.참다못한 은행들이 『이 돈을 안쓰면 위약금을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과연 말대로 실행될지는 극히 의문이다.잘나가는 수출대기업들의 힘이 몰라보게 세졌기 때문이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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