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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주택시장 침체의 끝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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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35면

요즘 미국 주택시장의 몇몇 통계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집값이 바닥에 이른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4월 주택 판매가 전달보다 6.3%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는 2주 전 통계가 대표적인 예다. 다른 지표들도 언뜻 보면 ‘주택시장 침체의 끝’을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미국 집값이 많이 떨어진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집값 그래프는 완전히 포물선 모양이다. 급등하다 추락해 원점으로 돌아갔다. 공급 과잉이 주된 요인이다. 새 집과 기존 주택 판매는 2005년 6~9월에 정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당 기간 건설업체는 경쟁적으로 집을 지었다. 2006년 1월까지 신규 주택 건설이 봇물을 이뤘고, 그 결과로 엄청난 미분양 주택이 쌓였다.

현재 미국의 주택 착공 건수는 2006년 1월 정점에 견줘 63% 감소했다. 1차 오일쇼크 때인 1973~75년의 38%나, 84~91년의 57% 감소를 능가한다. 77~81년의 65% 감소에 조금 못 미치는 기록이다. 주택 건설업자들의 표정이 어두울 만도 하다.

지난주 월요일 미 주택건설협회(NAHB)가 특별 기자회견을 했다. 사전에 워낙 떠벌리기에 나는 미국 집값이 모두 0달러가 돼 협회의 주택지수가 제로로 추락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수는 예상과 달리 나쁘지 않았다. 6월 지수가 18로, 한 달 전보다 1포인트 떨어졌을 뿐이다. 낙폭이 줄어들어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NAHB가 내놓은 다른 지표는 그다지 밝지 않다. 협회의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사이더스가 설명한 대로 주택 수요는 저점을 계속 맴돌아 좀처럼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주택지수도 빠르게 반등했던 91년과 달리 최근 10개월째 바닥을 기고 있다.
미국 모기지은행연합회(MBA)에 따르면 올 1분기 주택가 압류 비율이 전체 대출금의 2.47%에 달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와 주택 컨설턴트인 토머스 롤러는 1순위 채권자들이 가압류 절차를 밟고 있는 주택이 140만 채에 이른다고 말했다. 미국 전역에 쌓여 있는 미분양 주택의 27%에 이르는 규모다.

더 놀라운 점은 가압류가 진행 중인 주택이 얼추 1년 뒤에는 시장에 매물로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팔리지 않은 집이 쌓여 있는데 가압류 주택까지 나오면 시장은 어떻게 될까.

주택시장의 과거 흐름을 보면 신규 주택 판매가 잘 돼야 주택 착공도 활발해진다. 착공 건수가 늘어나면 국내총생산(GDP)도 늘어났다. 신규 주택 건설은 GDP상에서 투자 증가로 계산된다. 주택 건설업자들은 미분양 주택을 해소하기 전에는 좀처럼 주택 착공을 늘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도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 건설업자들이 분양가격을 낮춰야 한다. 하지만 업자들은 분양가를 낮추면 사람들이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 집을 사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분양가가 잘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팔리지 않는데 값이 제자리인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주택시장의 바닥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주택시장이 극도로 침체된 주나 도시의 분양가가 기존 주택 값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신규 주택 분양이 잘될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분양가가 충분히 떨어지는 순간이 주택시장 침체의 끝이 보이는 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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