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회화의 결합 '피에르 & 쥘'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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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피에르가 찍고 쥘이 붓질을 한 2000년 공동작업 ‘라 파니’는 이들이 좇는 순간적 욕망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피에르와 쥘’의 세계에서 성적 자유는 "당신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일종의 오락이다.

'피에르와 쥘'은 영화 제목이 아니다. 공동작업을 하는 프랑스 남성 작가들 이름이다. 피에르는 사진작가이고 쥘은 화가다. 1976년 한 파티에서 만나 운명처럼 서로에게 파고든 두 사람은 동성애 냄새가 물씬하면서도 고전적이고 환상적인 작업세계를 보여준다. 사진과 회화가 얽히고, 두 남자의 삶과 욕망이 하나된 작품은 성에 대한 금기의 벽이 점점 허물어지는 현대사회의 단면도로 다가온다.

9일부터 5월 16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피에르 & 쥘-아름다운 용(龍)'은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이들의 회고전이다.

8일부터 5월 16일까지 서울 평창동 갤러리 세줄에서 개최하는 프랑스 사진전 '팝 컬처'에도 이들의 작품이 나와 '피에르 & 쥘'의 기이한 이미지 세계를 맘껏 즐기게 됐다.

76년 초기작부터 2003년 근작까지 모두 70여 점이 나왔으니 20대부터 50대까지 두 남성의 성적 팬터지의 추이를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체험이다. 광고.패션.출판 등 프랑스 시각문화에 두루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의 눈을 통해 유럽 성문화의 일면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수줍은 듯 살짝 치마를 치켜들고 고혹적인 눈길을 던지는 미소년을 찍고 그린 '라 파니'는 남성의 성적인 도발(섹스 어필)이 여성의 그것보다 더 자극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에르의 카메라 렌즈가 잡은 중성적 이미지를 쥘의 붓이 거치면서 훨씬 농염하게 짙어진 성의 전형,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환상적인 성을 만난다.

해바라기들 속에 붕 뜬 이 뽀얀 인물은 "당신의 욕망이 원한다면 무엇이든"을 외친다.

피에르와 쥘의 세계가 늘 이렇게 부드럽고 온유한 것만은 아니다. 칼로 그어진 핏자국이 선명한 가슴이나 족쇄가 채워진 목과 발이 보는 이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하는 작품도 많다.

미술평론가 심상용씨는 이런 이미지를 "'고감도 섹스'의 편린이 지니는 은폐된 폭력과 공격성"이라고 지적한다. 심씨는 "이 세계는 다만 어떤 긴장완화를 경유하는 여가선용의 가벼운 경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오락적인 쾌락을 권장할 뿐"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그것이 오르막길이 아니라 내리막길로 치닫는 우리 시대의 한 이미지라는 사실이다.

피에르와 쥘은 반문에 답한다. "욕망, 혹 쾌락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그것이 게이.레즈비언이건 이성애자건, 여장 남자건 남장 여자건, 성전환가건 아니건,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 아닌가!" 대답은 피에르와 쥘의 작품을 보는 각자의 눈에 달렸다. 02-2124-880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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