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뛰고 구른다, 살아 돌아오기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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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에 파병되는 자이툰 부대원들이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특전사교육대 주둔지 방어 훈련장에서 차량테러를 가정한 방어명령이 떨어지자 긴급히 뛰어나가고 있다. [김상선 기자]

"5분대기조 비상!"

차도호(43)대대장의 짧은 명령이 울리자마자 위장막을 덮어 놨던 막사 속에서 완전무장한 20여명의 병사가 뛰쳐 나온다. 내닫는 군홧발에 뽀얀 흙먼지가 일어난다.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특전사교육대. 지금 이곳은 작은 이라크다. 이곳 '주둔지 방어훈련장'은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로 이중삼중 방어망이 쳐져 있다. 삼면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망루가 서 있다. 규모만 축소했을 뿐 한국군 주둔지와 구조가 동일하다.

이날 훈련은 자폭차량 테러에 대비하는 것이다. 내닫던 병사들은 순식간에 참호와 초소로 뛰어들어갔다. 민사여단 ○○○대대는 대부분이 특전사 하사관들로 직업군인이다. 꽉 다문 입에 번뜩이는 눈동자는 이들이 군의 최정예 병력임을 말해준다.

이날 훈련에는 수도기계화사단에서 자원한 송현대(20)이병도 참가했다. 그는 자원동의서를 내줬다가 철회했던 부모를 다시 설득해 기어코 자이툰 부대에 들어왔다. 그가 여섯살 때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때 이후 아버지는 내가 여행만 간다고 해도 걱정하신다. 이라크에서 건강하게 돌아와 아버지가 마음 깊은 곳에 품어온 짐을 없애드리겠다." 외아들인 그가 자이툰 부대에 자원한 동기 중 하나다.

초소에서 K1 소총으로 전방을 겨눈 그의 손등과 얼굴은 햇볕에 타서 새까맣다. 눈동자만 반짝거린다. '힘드냐'는 질문에 그는 답한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훈련한다."

작은 산 너머 사격장에서 총소리가 계속되는 사이 주둔지 방어 훈련장 맞은편의 언덕에서는 1개 소대 병사들이 낮은 포복으로 수풀을 기어오르고 있다. 수색 작전이다. 차도호 대대장은 "자이툰은 모두 자원병들이다. 모두 스스로를 위해 자발적으로 뛰고 구른다"고 말했다.

자이툰 부대의 하루는 6시 기상으로 시작된다. 점호와 식사를 마친 뒤 오전 8시부터 주둔지 방어와 사격.수색.정찰.검색 등 실전 훈련을 한다. 오후 3시부터는 4㎞ 구보와 함께 두 시간 동안 체력 단련 시간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8시까지 현지 문화.관습 수업이 이어진다.

체력단련 시간을 제외하면 장교든 사병이든 무조건 헬멧과 전투복.방탄복을 착용하고 총기와 탄띠를 둘러야 한다.

콧수염을 살짝 기른 자이툰부대 본부대 김철(32)상사. 그가 어머니(58)에게 파병 사실을 털어놨을 때 노모는 "너마저 가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형 철민(36)씨는 제마부대 대원으로 지금 나시리야에 가 있다. 동생 삼철(28)씨는 지난해 동의부대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왔다. "고심했다. 걱정도 된다. 그러나 도전할 기회라고 결심했다." 울며 말리는 아내 앞에서도 그는 당당했다. 그러나 여덟살짜리 딸이 TV를 본 뒤 "아빠, 이라크에 가지 마"라고 말했을 때 울컥했다고 한다.

본부대의 L상사는 노모(75)가 걱정된다. "어머니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파병 갈 때 미국에 연수받으러 간다고 할 거다."

훈련소 운동장을 바라보는 건물의 외벽에는 "자이툰이여, 평화와 번영을 이라크에"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파병이 결정된 이상 모두가 원하는 바람이다. 동시에 이들 한명 한명 모두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가족만의 심정은 아니다.

성남=채병건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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