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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히딩크 어퍼컷에 유럽이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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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6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한국 축구대표팀을 보는 듯했다. 러시아는 벌처럼 빠르게 윙윙거리며 ‘바이킹 군단’ 스웨덴을 쏘아붙였다. 공교롭게도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뛴 러시아. 그들의 플레이에 태극전사들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들은 8강에 올랐다. 꼭 6년 전이었던 2002년 6월 18일, 한국이 이탈리아를 꺾고 그랬던 것처럼.

‘마법사’ 히딩크가 유럽의 ‘잠자는 거인’ 러시아를 깨웠다.

러시아는 19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 노이 슈타디온에서 열린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8) D조 마지막 경기에서 압도적인 공세를 펼친 끝에 스웨덴을 2-0으로 눌렀다. 2승1패의 러시아는 이날 잘츠부르크에서 그리스를 2-1로 제친 스페인(3승)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러시아의 조별리그 통과는 1988년 이후 20년 만이다.

◇태극전사의 ‘재림’=중원을 장악한 채 거구의 스웨덴 공격수를 일선에서 온몸으로 막은 주장 세마크의 모습은 ‘진공청소기’ 김남일을 떠올리게 했다. 전반 24분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오른쪽 미드필더 지랴노프에게서는 송종국(수비)과 이천수(공격)가 오버랩됐다. 왼쪽 풀백이지만 최전방까지 지원사격에 나서 후반 5분 쐐기골의 단서를 제공한 지르코프는 이영표였다.

히딩크 감독 지시로 3주 만에 체중을 4㎏이나 줄였던 파블류첸코는 결승골을 넣었다. 그는 차두리의 체격과 안정환의 기술, 황선홍의 결정력을 두루 갖췄다. 선제골의 시발점이 된 데 이어 쐐기골까지 터트린 아르샤빈은 박지성처럼 쉴 새 없이 경기장을 누볐다. 제니트(러시아)를 우승으로 이끈 아르샤빈은 이번 대회 활약을 발판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행이 유력하다.

경기 내용도 2002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전을 빼다 박았다. 포르투갈의 피구가 자존심을 굽히고 0-0 무승부를 제안했지만 태극전사들은 벌떼처럼 상대를 밀어붙이며 1-0 승리를 거뒀다. 러시아는 2-0으로 달아난 뒤에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날 22개의 슈팅을 쏘았다. 골대를 맞힌 것만 두 번. 득점 찬스 중 절반만 살렸어도 4-0, 5-0은 될 뻔한 경기였다.

◇찬사 쏟아진 히딩크=히딩크 러시아 감독은 스웨덴전을 앞두고 “빅리그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한국이나 러시아가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그 결과 그는 한국에서 이뤘던 성공을 재현했다. 러시아의 한 취재진은 “20년간 대표팀 경기를 봤지만 오늘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러시아는 22일 스위스 바젤에서 히딩크 감독의 고국인 네덜란드와 4강 진출을 다툰다. 히딩크는 “네덜란드가 나은 점은 우리보다 이틀 더 쉰 것뿐”이라고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D조 1위 스페인은 8강전에서 C조 2위 이탈리아와 격돌한다.

인스브루크(오스트리아)=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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