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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빈곤퇴치의해>1.자이르 고마 르완다 난민촌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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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빈곤」-유사이래 인류 최대의 공적(公敵)인 빈곤으로 이 순간에도 5초마다 2명이 숨지고 있다.하루 3만4,000여명,1년이면 1,200여만명이 죽어간다는 계산이다.빈곤의 요인은 다양하다.척박한 자연과 미개발에 과밀인구로 인해 초 래된 만성적빈곤이 있는가 하면 생태계 파괴와 천재지변등으로 인한 악순환의결과로 빚어지는 환경적 빈곤이 있다.전쟁과 인종분규등 분쟁으로파생되는 정치적 빈곤은 단순한 굶주림에 더해 지체장애자와 난민을 양산하는등 또다른 괴물이다.어 느 경우든 한번 빈곤의 나락에 빠지면 빈곤의 악순환으로부터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유엔이 정한「빈곤 퇴치의 해」를 맞아 기아가 만연하고 있는 환경과 그곳에서 이뤄지는 빈곤 퇴치의 노력및 빈곤 퇴치의 항구적 방안을점검,연재한다.
[편집자註] 중부 아프리카 자이르의 고마.호수를 끼고 동쪽의르완다와 접경해 천혜의 휴양도시였던 이곳이 르완다 난민 70여만명이 몰려드는 바람에 대규모 난민촌으로 변했다.
이곳 난민들은 94년4월부터 3개월동안 계속된 후투족과 투시족간의 내전에서 100만명의 양민이 학살당한 이후 자이르.부룬디.탄자니아등 인근 국가로 도피한 난민 200만명중 일부다.
5개 캠프중 하나로 17만명이 수용된 「카붐바 캠프」는 「동물농장」이라는 난민들의 자조적 표현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낡고 찢겨진 조각천으로 이어붙인 수만채의 움막들은 넓은 광야와 언덕을 뒤덮은채 굶주림으로 신음하는 처절한 모습.거대한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 길거리,누더기를 걸치고 때에 찌든 손을 내미는 구걸행렬,영양실조로 눈자위가 벌겋게 물들어 실명을 앞둔 아이들만이 기다리고 있다.
뭔가를 기대하는 간절함과 경계의 눈초리를 받으며 캠프에 들어서면 한평이 채 못되는 좁은 공간에 5~6명이 웅크리고 있다.
깡통 그릇 속에 먹다남은 음식찌꺼기와 오물이 무더위와 뒤범벅돼참을 수 없는 악취를 내뿜고 있는 가운데 말라버 린 젖가슴을 갓난애 입에 물린 한 여인네가 힘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간간이 국제적십자사(ICRC),국경없는 의사들등 구호및 봉사를 위한 비정부간 조직기구(NGO)의 깃발이 보이지만 그들의 노력이 상황을 호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란 사실만을 부각시킬 뿐이다. 말라리아.이질등 질병과 기아로 죽은 시체가 근처에 50여구나 뒹굴고 있다는 주민들의 귀띔은 이들에게 아직까지 교육.건강등 인간의 기본적 생활여건조차 사치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시켜준다. 오로지 단 한 줌의 곡식이 절실한 상황이다.
유엔산하 세계식량계획(WFP)지부는 연간 4,500만달러 규모의 옥수수.콩등 곡물 12만을 이들 난민에게 공급하고 있지만허기에 주린 난민들의 배를 채워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분량.
『이곳 사람들의 1일 평균 열량 요구량 1,996㎉의 4분의3수준인 1,500㎉를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제라르 바키(46)WFP 담당관은 힘없이 얘기한다.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UNHCR)의 카붐바 캠프 책임자인 아다마 바스(32.여)는『식량 배급권과 현물이 배포과정에서 유출되거나 배급권을 빼앗기 위해 이웃을 살해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발생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식량배급권을 둘러싼 범죄와 부정이 판치면서 어린이와 여성들을중심으로 「위기」에 빠져있는 비율이 전체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유엔이 난민들의 본국송환을 적극 권장하지만 난민들은 죽음의 공포보다는 굶주림을 택하고 있다.대부분 후투족인 난민들이 귀환할 경우 정권을 잡은 소수 투시족들이 인종청소의 제물로 삼을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다.
***처형 두려워 본국송환 거부 1년6개월전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130여㎞를 걸어 이곳 난민촌에 정착한 르와키가라마(36)목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도착하자마자 살해당할것이 뻔하다』며 『후투족 망명정부가 정권을 재탈환할 때까지 난민으로 남아있겠다』 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4월 르완다내 한 난민 수용소에서 하룻밤 사이에2,500여명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도로상의 지뢰폭발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UNHCR는 고마 난민들의 송환이 한달평균 2,000명선에 머물러 고심하고 있으나 정치적 해결에 기대할 뿐이다.
WFP의 걱정도 태산같기만 하다.주로 유엔을 통해 공급되는 구호식량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이르측선 강제추방 계획 바키담당관은『식량문제도 문제지만 난민들이 인근의 나무를 마구 잘라 땔감으로 쓰기 때문에 생태계및 환경파괴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이지역의 사막화를 우려하고 있다.
난민들의 폭증으로 인한 치안불안.물가상승.환경파괴 등 사회문제가 제기되면서 자이르정부가 강제추방계획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르완다 난민들은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부룬디.소말리아.앙골라등 내전과 종족분규로 유랑하는 수백만 난민의 일부며 더 넓게는 오늘의 아프리카가 안고있는 2억7,000만 극빈자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고마(자이르)=고대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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