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재일동포 최영씨 10일 프로 데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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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영/생년월일 1978년 4월12일/출생지 일본 오사카(大阪)/국적 한국/키 1m78㎝/몸무게 83㎏/직장 격투기 링'.

재일동포 3세 최영(崔領.26)씨의 이력서다. 오는 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이종격투기 '스피릿MC 대회'에서 프로 격투사로 첫 발을 내딛는 그는 "직장에 첫 출근하는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난으로 인한 최악의 청년 실업 사태에 온 몸으로 맞서겠다는 결의처럼 느껴진다.

崔씨는 처음에는 농구를 했다. 중학교까지 전도 유망한 센터로 활약했다. 그러나 고교 시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팀 선배들에게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당하면서 문득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다고 느낀 그는 98년 서울로 유학와 한국외국어대 일어과에 입학했다. 열심히 공부해 동시통역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러나 유학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잦은 광우병 파동으로 일본에서 불고기집을 하던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영국으로 유학갔던 동생(최영이.24)은 도중에 집으로 돌아왔고, 崔씨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본어 강사와 공사장 막노동으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는 데 6년이 걸렸다.

졸업 후엔 새로운 시련이 닥쳤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많은 이력서를 냈으나 모두 허사였다. 한국과 일본의 기업 모두 경기 악화로 인한 구조조정의 찬바람이 불며 사람을 뽑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일본은 물론 모국인 한국에서도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아무리 힘들어도 조상의 나라에서 뿌리를 내려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던 중 崔씨는 일단 이종격투기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동생이나 친구들과 '안방 스파링'을 자주 벌였던 그는 유학을 포기한 뒤 프로 레슬러로 입문한 동생 영이씨의 영향으로 격투기에 상당히 흥미를 갖고 있었다.

2002년 아마추어 격투사로 나선 그는 일본에서 세 차례, 한국에서 한차례 우승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프로 데뷔전인 이번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인생을 걸고 싸우겠다"며 진지한 자세로 훈련 중인 崔씨는 당분간 치열한 링에서 젊음을 불사른 뒤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찾아볼 생각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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