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사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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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산비가 오려니 바람이 누각에 가득하다(山雨欲來風滿樓).”

뭔가 미리 펼쳐지는 조짐에 관해 얘기할 때 사람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명구다. 당(唐)나라 때 감찰어사라는 벼슬을 지낸 허혼(許渾)이라는 사람이 진시황 때의 수도였던 지금의 셴양(咸陽) 성곽 동루에 올라 지은 시다. 앞 구절은 “물가에서 구름이 일자 해는 누각 아래로 잠긴다(溪雲初起日沈閣)”는 것으로, 뒤 구절의 분위기를 미리 잡아 이끈다.

바람은 비의 전조(前兆)다. 해가 지려는 때에 누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비를 예고하고 있다. 비가 아직 내리지 않은 미연(未然)의 상황, 그러나 누각에 가득 찬 바람은 무엇인가 불어 닥칠 위험을 상징하고도 남는다.

중국인에게는 위기를 생각하는 ‘사위(思危)’의 태도가 자주 엿보인다. 바람이 가득 찬 누각에 올라 앉아서 정감보다는 먼 산에서 닥쳐올 비를 예감하는 시인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그 장구한 역사 속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란(戰亂)과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얻었던 생활의 지혜일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명구가 있다. “편안하게 있을 때 위험을 미리 생각하니, 그러한즉 대비함이 있을 것이요, 준비를 잘 한다면 또한 걱정이 없을 것(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이라고 한 말이다. 『좌전(左傳)』에 등장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는 ‘유비무환’만이 잘 알려져 있지만 ‘편안하게 있을 때 위험을 미리 생각한다’는 말은 옆에 두고 내내 곱씹어볼 만한 구절이다.

문인들끼리 위험한 상황을 표현하는 말(危語) 만들어내기도 등장한다. 동진(東晋: 317~420년) 때 유명 화가 고개지(顧愷之)에 관한 일화다. 여러 친구들과 위험한 상황을 표현하는 말 짓기를 했다. ‘창끝으로 쌀을 일어 칼끝에 솥을 걸어 밥 짓기’ ‘100세 노인이 고목의 가지에 오르기’ ‘갓난아기가 우물 위 도르래 판에 올라가 있는 상황’ 등이 나온다. 백미는 나중에 나온다. “맹인이 앞 못 보는 말을 타고 야밤에 깊은 연못에 이르다(盲人騎<778E>馬, 夜半臨深池)“라는 말이다.

우리에겐 위기를 예감하고 이에 대비하는 자세가 부족한지 모른다. 쇠고기가 불러일으킨 한국 사회의 의사소통의 문제점, 거기에서 비롯한 정국 불안, 이어지는 파업이 국내 문제다. 유가와 곡물가의 급격한 인상으로 나라 경제가 위협받는 것은 외부의 걱정거리다. 위기가 겹쳐서 크게 증폭될까 걱정이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은 한국 사회는 눈이 먼 상황, 그를 이끄는 일부 방송은 어쩌면 앞 못 보는 말이다. 게다가 어느덧 비까지 줄기차게 내리고 있으니…. 추적추적 비 내리는 장마철, 떠올려본 우리 사회에 관한 단상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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