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얘기 더 하자는 건 좋은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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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한나라 당사에서 쇠고기 대책 미국방문단 황진하 단장<右>이 방미 결과 보고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택기·이달곤 의원. [뉴시스]

16일 오전 10시(미국시간 15일 오후 9시) 통상교섭본부는 미국을 방문 중인 김종훈 본부장이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3차 협의를 하지 않고 귀국하겠다고 발표했다. 통상교섭본부는 “협상을 중단한 게 아니라 연장한 것”이라며 “기술적인 세부사항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정에 없던 귀국 결정에 일각에서는 “협상이 깨진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나돌았다.

느닷없는 귀국 결정은 두 시간 만에 번복됐다. 미국 측이 김 본부장에게 추가 협의를 제안한 것이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미 기차로 워싱턴을 출발, 뉴욕으로 향했던 김 본부장은 열차 안에서 이런 연락을 받고 귀국 일정을 취소했다. 김 본부장은 슈워브 대표와 예정대로 워싱턴에서 3차 협의를 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그만큼 현지 분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정상 간의 전화통화 등을 통해 ‘30개월 미만’ 쇠고기로 수출입을 제한한다는 큰 틀에는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실행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간단치 않다. 민심을 수습하려면 합의 내용이 재협상 수준이 돼야 하고, 한편으로는 국제법과의 충돌 문제도 풀어야 한다.

◇우여곡절 협상 과정=이번 협상은 시작부터 급박했다. 13일(현지시간) 김 본부장은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슈워브 대표와 담판에 들어갔다. 하지만 토요일인 14일까지 이어진 두 차례의 협상 강행군에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2차 협의 직후 김 본부장은 “하루 쉰 뒤 다시 만날 것”이라는 말만 남긴 채 협상장을 떠났다.

쉬는 동안에도 양측은 전화통화 등으로 실무협상을 계속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김 본부장의 귀국 결정은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나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귀국 결정과 철회 배경에 대해 “우리는 기술적인 세부사항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미국은 장관급 협의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상황 판단부터 엇갈리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선 김 본부장이 전략적으로 강수를 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협상이 잘 안 풀리자 ‘귀국’이라는 최후 통첩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먹혀 다급해진 미국 측에서 시간을 벌면서 대응하기 위해 김 본부장을 붙잡았다는 분석이다. 외교 협상에서 이런 사례는 종종 있었다. 미국은 1999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양자협상 때 당시 샬린 바셰프스키 USTR 대표가 호텔 체크아웃을 세 번씩이나 하면서 중국을 압박한 적이 있다.

어쨌든 김 본부장이 현지에 남게 된 것은 우리 측에 ‘좋은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미국이 협상을 더 하자는 것은 좋은 조짐”이라고 말했다.

◇여전한 난제=30개월 미만 쇠고기만 교역한다는 것은 한·미 간에 어느 정도 합의가 됐다. 민간 수출입업자들의 자율규제가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꼽힌다. 이명박 대통령도 15일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어떤 경우에도 들어오지 못한다”고 못을 박았다.

문제는 실천 방법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무엇보다 ‘성난 민심’을 진정시킬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사실상 재협상과 같은 효과라며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민간 자율규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증을 확보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최대한 정부가 개입한다는 인상을 피하고 싶어한다. 정부의 직접 개입은 WTO 통상규범을 위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이번 협상 결과가 대만·일본 등 다른 수입국과의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조심스럽다.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수출보증(EV) 프로그램을 미국 측이 꺼리는 것도 이를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포장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또 미국 정부가 민간 자율규제를 보증하는 기간을 놓고도 양국이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는 최소 1년 이상의 정부 보증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미국은 그 기간을 줄이자는 입장이다. 타이슨푸드와 카길 같은 미국의 대형 쇠고기 수출업체는 수출 개시 후 120일까지만 월령 표시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협상의 큰 방향은 잘되고 있다는 낙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미국으로서도 조속히 쇠고기를 수출하려면 일정 부분 양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 관계에 금이 가는 것도 미국 입장에선 부담이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투자실장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문제의 해법을 쉽게 찾을 수는 없는 법”이지만 “큰 방향은 합의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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