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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음악 강렬한 ‘인 더 하이츠’ 13개 부문 후보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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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미국 공연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상식이자 연극·뮤지컬계의 축제인 ‘2008 토니 어워즈(Tony Awards)’ 발표가 하루 앞(한국시간 16일)으로 다가왔다. 매년 이맘때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개최되는 토니상은 올해로 벌써 63회를 맞았다. 한 해 동안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모든 연극과 뮤지컬을 대상으로 수여되는 이 시상식의 권위는 이미 정평이 났다.

랜 세월을 거쳐 체계화된 시상식 운영위원회의 후보 선정과 시상식 진행은 물론이고 무대 공연으로서는 드물게 하이라이트 공연 장면이 지상파 TV 네트워크를 통해서 방송된다는 점에서 엄청나다. 토니상 시상식이 끝난 직후에는 인상 깊은 장면을 보여준 공연의 티켓 판매가 폭주하는 등 광고 효과도 크다.

토니상 후보작이 발표되면 결과를 점치기 쉬운 해도 있지만 반대로 오리무중에 빠지는 때도 많다. 올해 뮤지컬의 경우,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결과 예상이 매우 어렵고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후보작들이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꽤 엇비슷하고 어느 한 작품이 뚜렷하게 독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스’의 제작자·연출가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가 다시 뭉쳐 만든 ‘영 프랑켄슈타인’은 지난 시즌 최대 화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뚜껑이 열리자 전작의 성공에만 기댄 안이한 복제품으로 드러나 흥행과 비평 면에서 실망을 안겨주며 일찌감치 수상권에서 떨어져 나갔다.

‘미녀와 야수’ ‘라이언 킹’ ‘아이다’ ‘타잔’에 이어 디즈니사의 다섯 번째 브로드웨이 진출 작품이자, 1990년대 이른바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인어공주’의 무대판 역시 빈약한 상상력을 드러내며 비싼 아동용 뮤지컬이라는 비난과 함께 주요 부문 후보 진입에 실패했다.

기대를 모았던 ‘영 프랑켄슈타인’과 ‘인어공주’ 모두 5개 이하 부문 후보에만 간신히 이름을 올리는 등 안 좋은 성적을 내자 이 틈새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작품은 뉴욕에 사는 라틴계 이민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다. 브로드웨이에서는 그동안 들을 수 없던 랩·힙합·살사 등 소위 라틴 음악으로 무대를 채우며 작품상·연출상을 비롯해 이번 후보작들 중 최다인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다만 작품의 완성도 자체를 작곡·작사가 겸 주연배우까지 맡고 있는 28살의 린 마뉴엘 미란다의 역량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한다는 게 약점이다. 작곡가가 출연까지 도맡은 다른 사례로는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패싱 스트레인지(Passing Strange)’가 있다. 이 작품 역시 작가·작곡가·음악감독을 겸하면서 무대에서는 기타를 연주하고 내레이터까지 직접 연기하는 스튜의 역할에 무게중심이 확 쏠렸다. 작사·작곡(Original Score)상 부문은 이 둘 중 한 사람이 받을 거라고 예측해 보지만 둘 다 음악적 완성도는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다.

‘헤어스프레이’의 원작자 존 워터스 감독의 또 다른 뮤지컬 영화 ‘크라이 베이비’를 각색한 동명의 뮤지컬도 최근 개막해서 후보 리스트에 막차로 합류했지만 전작인 ‘헤어스프레이’의 인기를 뛰어넘기는 이미 힘들다는 판단이다. 1980년에 개봉된 영화 ‘재너두’를 각색한 동명의 뮤지컬도 젊은 제작자들에 의해 지난 시즌 700석 규모의 아담한 무대에 올려져 대형 작품들의 실패 속에서 뮤지컬 코미디의 명맥을 잇고 있다.

원작 영화의 처절한 실패를 패러디하며 스스로를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한 것은 좋았지만 지나치게 가벼운 접근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수상을 하기에는 함량 미달인 게 사실이다. 연극 부문에는 독보적인 작품이 버티고 있다.

블랙 코미디와 멜로드라마가 혼합된 트레이시 레츠의 브로드웨이 데뷔작이자 올해 퓰리처상 연극 부문 수상작이기도 한 ‘8월: 오세지 카운티(August: Osage County)’로 연극 부문 최다인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 외 후보에 오른,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각색한 패트릭 바로우의 코미디 ‘39 계단’, 톰 스토퍼드의 ‘로큰롤(Rock ’n’ Roll)’, 코너 맥퍼슨의 ‘뱃사람(Seafarer)’ 등은 모두 런던발 작품들이라 ‘영국 없이는 연극 없다’는 경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장 치열한 경합은 뮤지컬 리바이벌(재공연) 작품상 부문이다. 로저스·해머스타인의 60년 전 초연 작품인 ‘남태평양’을 예술적인 뮤지컬 제작의 선두주자인 링컨센터 시어터가 재해석해 올려 화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작곡가로 꼽히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일요일의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남태평양’의 켈리 오하라와 함께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인 패티 루폰의 ‘집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돌하고 있다.

이 세 작품 중 어느 작품이 수상을 한다고 해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프러덕션마다의 완성도가 출중하다. 중량감 있는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포진한 이 세 작품에서 배우 부문의 대거 수상도 점쳐진다. 남우주연상에는 ‘남태평양’에 출연한 오페라 가수 파울로 쇼트가 기량 덕분에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올해 토니상은 795명의 다양한 업계 관계자들로 이뤄진 최종 투표인단이 직접 뽑은 수상작에 영예의 트로피가 수여되며 공로상은 스티븐 손드하임에게 헌정됐다. 63년의 역사를 쌓은 올 토니상 시상식장에서 어떤 이변이 연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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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작품을 이긴 중소극장 알짜 뮤지컬
토니상 후보에 오르려면 해당 시즌에 반드시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이어야만 한다. 현재 브로드웨이 극장의 숫자는 39개로 그 규모는 적게는 700석에서 많게는 1935석에 이르는 등 다양하다. 때로는 200~3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성공한 작품 중 투자자를 모아 700석 규모의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후 대극장 작품들과 경쟁해 당당히 승리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한다.

2004년 200석 규모의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초연한 아담한 작품 ‘애비뉴 큐(Avenue Q)’가 대표적인 예로 1900석 규모의 초대형 블록버스터인 ‘위키드(Wicked)’를 물리치고 뮤지컬 작품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도 규모만으로는 ‘인 더 하이츠’ ‘패싱 스트레인지’ ‘재너두’ 등의 ‘다윗’급 경량 작품들이 즐비해 작년에 이어 중극장 시대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경쟁할 ‘골리앗’의 부재와 다윗의 무기가 조약돌에도 못 미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조용신(뮤지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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