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 명문 동아리5 <서울고 ‘모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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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파동이 한창인 때, 고등학생 두 명이 뉴스를 보며 대화를 나눈다. “한미 FTA의 재협상이 과연 이뤄질까?” “쇠고기 관련 종목의 주가를 주시해야겠어.” 어른 못지 않게 진지한 자세로 사회적 이슈를 논하는 이들. 바로 서울고 모의주식투자 동아리 학생들이다.


  일명 ‘모투’라고 불리는 모의주식투자 동아리를 만나기 위해 서울고 전산실을 찾았다. 학생들은 저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갖가지 그래프 선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부장인 이동윤(17·2년)군은 “각자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주가 등락을 분석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모투’ 회원들은 각 증권사 사이트에서 이용 가능한 모의주식투자 프로그램을 통해 가상으로 투자한다. 수익률의 등락과 그 요인을 비교·분석하며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것.
  모투부는 지난해 특별활동부에서 동아리로 전환됐다. 올해 졸업한 1기 선배들이 동아리의 기틀을 다져준 덕분이다. 1기 부장이었던 고남규(19·연세대 경제학과 1년)군은 “동아리로 독립하면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수업은 선배들이 주식 투자 관련 책을 읽고 공부해와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꼼꼼한 조사 + 투자 경험 필요
  학생 차원의 토론과 순수한 독학이 전부지만, 주식 공부에 대한 열의만은 전문가 못지않다. 사회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각종 뉴스에 항상 안테나를 세운다. 매일 신문에 실리는 시세표를 꼼꼼히 살펴 코스피 지수의 움직임과 업계 동향, 주식거래량을 알아보는 것은 기본이다. 주가가 오른 회사들은 따로 심층 분석한다. 함영우(17·2년)군은 “매년 발표하는 소비자 만족도 지수가 주식의 안정성과 거의 일치해 주로 참고한다”며 “또 각 기업의 사이트에 들어가 경영진이 누구인지, 성향이 어떤지, 새로운 사업계획이 있는지 등을 조사한다”고 귀띔했다.
  학생들은 그러나 “백 번의 이론보다 한 번의 투자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모의든 실제든 직접 투자해보는 것이 곧 공부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학기마다 모의주식투자 대회를 연다. 시험기간을 피해 한 달 동안 조를 편성해 모의투자를 한 뒤,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낸 조에게 상금을 지급한다. 상금은 학생당 1000원씩 낸 대회 참가비를 모은 것이다. 최근 대회에서 우승한 조의 일원이었던 이정우(17·2년)군은 “돈 벌기가 참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며 “최근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라는 책을 읽었는데, 우리는 10대부터 시작하는 만큼 기회도 많을 거라 생각하니 미래가 밝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골드먼삭스와 같은 세계적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는 정우군은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선물시장 등 경제 구조 전반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판단력과 감각이 중요
  그렇다면 이들의 투자 실적은 어떨까. 모투 회원의 절반 정도는 모의 투자뿐 아니라 실제 투자도 하고 있다. 용돈을 조금씩 모아 실전 경험을 쌓고 있는 것. 최재원(17·2년)군은 작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20만 원짜리 주식에 투자했는데, 현재 27만원으로 올라 배당금 6000원을 받기도 했다. 재원군은 “호재를 철저히 조사한 덕분인 것 같다”며 “판단력과 감각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동윤군은 반대의 경우다. “형과 함께 작년 10월에 투자한 주식이 1.5배까지 올랐었는데 현재는 폭락한 상태”라며, 자신은 주가가 급락할 것으로 예견했으나 형의 의견을 따른 것이 화근이었단다. 베이징올림픽 관련 간판제작업체에 투자했다는 동윤군은 “이제 베이징 소리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긴 하지만자신의 소신대로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게 소득”이라며 웃었다.
  모투는 작년 여름 방학 때 동아리 전체가 돈을 모아 실제 투자했다. 그러나 다음날 바로 주가가 떨어지자 모두 겁먹고 포기했다고. “올 방학에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라며 전문가 도움 없이 스스로의 조사만으로 수익을 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모투 회원들은 한결같이 “투자에는 엄청난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냥 놔두면 오르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나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태도는 위험하다는 얘기다.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사회 이슈에 귀를 기울이며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동아리 회원들은 대체로 학교 성적도 뛰어나다. 상당수 학생들이 전교 순위권에 포진해 있다. 희망 진로는 다양하다. “경제·경영학을 전공할거냐”는 물음에 “재테크 지식이 경제 전공자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되묻는다.
 
부모가 투자자금 지원하기도
  현재 동아리 회원수는 총 41명. 지금도 가입 신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김동우(16·1년)군은 “아버지가 펀드매니저라 공통의 관심사를 찾으려고 가입했다”며 “동아리 활동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고, 학교 밖 사회 현실에 대해서도 알게 돼 공부를 좀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고창호(17·1학년)군은 “동아리 가입 당시 ‘그런 동아리도 있냐’며 의아해하던 어머니가 최근에는 ‘종잣돈을 대주겠다’고 한다”며 웃었다.
  물론 “학생이 무슨 주식투자냐”며 반대하는 부모도 있다. 이미 주식의 쓴맛(?)을 본 적이 있는 분들. 주식에 빠지게 될까봐, 혹은 공부할 시간을 빼앗길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과 경제관념을 일찌감치 갖게 되는 점을 본 뒤에는 곧 긍정적인 태도로 바뀐다.
  “반드시 여유자금으로만 투자해야 하고요, 욕심은 금물이에요.” 아이들이 똑부러지게 말한다. 모투 동아리 회원들은 “투자 공부를 통해 돈의 소중함을 깨닫고 경제를 보는 안목이 생겨났다”고 입을 모았다. 이론만 제시돼 있는 교과서에서 벗어나 직접 사회를 겪어보게 됐다는 모투 학생들.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대비하는 모습이 당당해 보였다.  
프리미엄 최은혜 기자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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