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의 오찬 회동에서 ‘심대평 총리’ 카드를 제안한 것은 ‘보수 대연합 구상’의 일환이다. 청와대는 최근 정국 위기의 가장 큰 이유를 보수 지지층 이탈과 분산에서 찾고 있다. “새 정부가 우군(보수 세력) 관리에 실패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총리 카드는 실현 가능성이 점차 불투명해지는 마당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흐트러진 보수 진영을 결집하고 이반한 충청권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이명박-이회창 보수 대연합’ 구상을 하게 됐다는 게 심대평 총리 카드의 내용이다. 자유선진당 심 대표는 관선 충남지사를 한 차례, 민선 충남지사를 세 차례 역임했다. 2006년 초 국민중심당을 창당해 대표 최고위원을 맡았다. 이 대통령은 그런 심 대표를 당선인 시절인 올 초 조각 때 총리로 기용하기 위해 여러 차례 만나 총리직을 제안했었다. 당시엔 4월 총선을 염두에 뒀고 지금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회동에서 즉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발표문 어디에도 이 민감한 내용은 없었다. 그 대신 이 총재가 대폭적인 인적 쇄신을 제안했고 이 대통령이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는 짤막한 한 토막 뿐이었다.
▶이 총재=“인적 쇄신은 국민이 바라는 선까지 이뤄져야 한다. 총리나 대통령실장, 개인적으로는 좋게 생각하지만 이번에 모두 바꿈으로써 지난 100일과는 다른 정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소영’ ‘강부자’ 같은 그런 이야기가 쑥 들어가게 하는 참신한 쇄신이 돼야 한다. 특히 총리는 정파나 세력을 대표하기보다 전 국민을 아우르는 차원의 기용이 돼야 한다.”
▶이 대통령=“국민의 눈높이를 충족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며, 국민의 정서를 충분히 고려해 하겠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심대평 대표 관련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추후 브리핑했다.
‘심대평 총리’가 현실화되려면 이 대통령과 이 총재 간의 신뢰 회복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앞으로 시국을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되거나 뜻을 같이하는 정책에 대해선 협조하고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이 총재는 “좋은 정책에 확실하게 협조하면서 야당으로서 할 일도 제대로 하겠다”고 다소 거리를 뒀다.
심대평 총리 카드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자유선진당 박 대변인은 “(심 대표가) 정파나 세력을 뛰어넘는 총리 후보로 거론될 순 있겠지만 오늘(15일) 회동에서 전혀 언급이 없었고 현재로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진당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든 ‘심대평 총리’ 카드가 거론은 됐겠지만 실패 일로를 달리는 정권과 손잡아서 이로울 게 없고, 독자적 위치에서 보수 세력의 입지를 다지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회동 뒤 청와대에서도 “심대평 총리 카드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않나”라며 “인적 쇄신 발표까지 시간이 있으니 심대평 카드는 아직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사 폭이 커지는 양상”이라며 “이젠 한승수 총리와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동반 퇴진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