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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국내각 수준으로 인적 쇄신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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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02면

영국 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이다. 영어로는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죽음마저 위트로 바꿔낸 유쾌한 표현이다. 한국 동요엔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납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우물쭈물은 어떤 경우일까. 그러다가 큰일 날 케이스다. 정부와 청와대의 인선에 임하는 그의 자세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한승수 총리의 내각과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청와대 책임자들이 전원 사의를 표명했는데도 이 대통령은 후임 인선을 우물쭈물하고 있다. 6·10 집회에서 절정을 이룬 ‘40일 촛불시위’로 이명박 정권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 있다. 성난 민심을 감당할 수 없어 취임 100일 만에 총사퇴 정국이 발생했다. 이런 일은 역대 어느 정권에도 없었다. 성난 민심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성난 민심은 쇠고기 파동으로 폭발했지만 그 밑엔 인사 실패라는 인화물질이 깔려 있었다. 부자 내각, 무능 청와대, ‘베스트 오브 프렌드’ 인선에다 박근혜 의원과 신뢰를 깬 공천 파문이 그의 1100만 지지자를 화나게 했다. 지지자들은 “이명박 OUT”을 외치는 거리의 촛불들에 대항하지 않았다. 적지 않은 숫자는 그쪽으로 마음을 바꾸기까지 했다.

이명박 인사 쇄신안의 핵심은 그의 지지자들을 다시 모으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자력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총리든 대통령실장이든 자기들의 프렌드 인사로 가선 곤란하다. 비상한 위기의식을 갖고 거국내각 수준의 인적 쇄신을 해야 한다. 본인이 직접 전화를 거는 형식으로 박근혜 의원에게 총리직을 제안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를 두 번씩 찾아갔으나 만나주지 않았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이 대통령이 초청한 것은 잘한 일이다.

대통령이 마음을 비운다면 이명박+박근혜+이회창의 보수 대협력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손학규 대표의 민주당과 진보 세력에도 인사 추천을 의뢰해 한두 명 정도 내각에 쓰는 방법을 검토할 만하다. 대통령으로선 거국내각 수준의 인적 쇄신을 하면 권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권력엔 역설적인 속성도 있다. 버리면 얻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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