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다른 목소리 ‘포용’ 아쉬웠던 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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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촛불집회는 10대들이 주도했다. 경쾌했다. 집회를 축제로 만들었다. 10대들은 단지 쇠고기 문제 때문에 거리로 나온 게 아니었다. 교육 문제 등 자신들의 고민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10대가 받는 스트레스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30대 후반 엄마는 아이들의 급식에 혹시 광우병 쇠고기가 섞이지 않을까 우려했다. 40대 후반 가장은 새 정부의 영어몰입 교육 발표 이후 더 올라간 학원비에 열을 받았다. 서울광장엔 “만화 보겠다”며 떼쓰는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나온 엄마가 합류했다. 광장에선 자유로운 토론이 벌어졌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교육 제도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세대 간 공감이 이뤄졌다. 촛불집회는 들불처럼 타올랐다.

5월 말 촛불은 더욱 커졌다. 몇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광장에 나왔다. 일부는 남아서 시위 강도를 높였다. 청와대 담을 넘으려 했다. 폭력도 사용했다. 경찰은 물대포로 맞섰다.

그런데 폭력은 확대되지 않았다. ‘비폭력이 폭력보다 강하다’는 촛불시위 주류의 합리성이 폭력을 이겨냈다.

6월 10일 촛불시위는 성난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회 규모로는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가장 컸다. 20만 명은 참가했을 법한 집회였다. 그럼에도 평화롭게 끝났다. 소수가 폭력을 행사하려 하면 다수가 이를 막았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안에서’ 참가자들은 포용력을 보여줬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도 ‘이명박 OUT’ 같은 구호를 기꺼이 따라 불렀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가족 참가자들을 위해 ‘진군가’ 같은 과격한 노래를 삼갔다.

촛불과 다른 길을 걷는 사람에 대한 포용은 어떨까.

얼마 전 방송인 정선희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큰 뜻도 중요하지만 작은 질서도 지키자’는 그의 발언은 과격한 것이 아니었다. 눈물로 용서를 빌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떤 네티즌은 ‘중학교 교사가 수업 시간에 미국산 쇠고기를 두둔하는 망언을 했다’며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했다. 공격은 잔인했다. 이 교사는 쓰고 있던 휴대전화를 해지하고 전화번호를 바꿔야 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10일 집회에서 연단에 서려 했다. 그러나 ‘매국노’라는 소리만 듣고 쫓겨났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회사원 양모(37)씨는 쫓겨나는 정 장관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여긴 자유발언대니까 올라와서 얘기하라고 하죠.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그게 민주주의잖아요.”

그러나 양씨의 외침은 함성 속에 묻혔다. 이제 촛불은 마지막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남의 다른 생각도 들어주는 다양성의 인정, 바로 ‘포용’이다.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