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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작가의 숨결 깃든 물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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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때 작가의 꿈을 키웠던 문학평론가 강인숙(건국대 국문과 명예교수)씨는 소설가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첫 구절(서두)에 좌절한 적이 있다. "그에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표현에 기가 죽었다. 강씨는 "비누 냄새 하나로 한 인물의 내면과 외면을 극명하게 드러낸 기법에 압도당했다"고 말했다.

'시작이 반''천릿길도 첫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다. 창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출발이 매끈할수록 작품도 쉽게 풀려나간다. 소설의 서두는 회화의 밑그림이요, 건축의 설계도인 셈이다.

오는 10일부터 5월 30일까지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열리는 '언어와 사물과의 만남- 작품의 서두와 문방사우전'에선 이 같은 문학의 향기에 듬뿍 취할 수 있다. 작고.생존 문인 70여명이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원고가 전시된다. 깔끔하게 인쇄된 활자에선 느끼기 어려운 작가의 인간적 모습과 만날 수 있다.

창작의 모티브가 됐던 물건이나 작가들이 애용했던 사물도 소개된다. 일종의 엿보기랄까, 숨겨진 내면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다. 작품과 작가의 닮은꼴을 찾는 일처럼 비치기도 한다. 예컨대 베레모를 깊게 눌러 쓰고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웠던 시인 조병화, 평생 성경책을 갖고 다녔던 소설가 이광수 등의 유품이 공개된다. 소설가 박범신과 시인 고은은 자기 이름이 인쇄된 원고지에만 글을 쓰고 있다.

이 밖에 각 작가들이 애장했던 붓.재떨이.만년필.필통.안경.도장.면도기 등이 진열된다. 붓 → 만년필 → 타이프라이터 → 워드 프로세서 → 컴퓨터로 연결되는 집필 도구의 변천사도 확인할 수 있다. 02-379-3182.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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