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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화기행] 거창 요수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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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구한말 조선을 다섯 차례나 방문한 영국 지리학회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 땅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이런 천혜의 자연에서 살아온 우리 선조들은 이 땅과 자연을 살아 있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큰 바위나 오래된 고목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산맥과 지맥을 끊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전국 명승지의 정자들을 보면 기가 강한 암반 위에 지어진 것이 많습니다. 기의 흐름을 알았던 것이지요. 산맥의 기는 산줄기를 타고 흐르다가 산자락에 돌출된 큰 바위에 뭉쳐 있어 그 위에 정자를 지으면 휴식과 수행에 더없이 좋습니다.

거창군 위천면의 요수정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덕유산의 맑은 물이 흐르는 원학계곡의 집터만큼 너른 너럭바위를 주춧돌 삼아 지은 정자는 정면 3간, 측면 2간짜리 누각입니다. 마루 가운데 판자로 한 간의 온돌방을 냈습니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을 닦은 요수 신권(1501~1573)이 지은 정자입니다. 정자 앞을 흐르는 위천에 암구대라는 거대한 거북바위가 있습니다. 암구대에는 요수정과 암구대의 정취를 읊은 시와 이름들이 빼곡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요수정에서 내려다보는 암구대도 일품이지만 암구대에서 바라보는 요수정과 바위, 노송의 어울림은 보는 이의 넋을 잠시 빼앗아갑니다. 이곳 모두를 수승대라고 부르며 거창 최고의 명승지로 손꼽습니다. 암구대 뒤에는 신권이 제자를 가르치던 곳에 세운 구연서원이 있어 답사의 볼거리를 더해 줍니다.

김영택 한국펜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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