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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지리기행>9.공주 명당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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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충남공주시사곡면화월리에 명당골이란 마을이 있다.드러내놓고 풍수를 지명에 사용한 희귀한 예다.본래 명당이란 임금이 신하들의 조회를 받는 정전의 앞뜰을 가리키는 말로 『예기(禮記)』에 의하면 밝고 올바른 가르침이 내려지는 집이란 뜻으로 나와 있고,『맹자(孟子)』「양혜왕 하편」에는 단순히 임금이 사는 집이라 설명하기도 한다.하지만 요즈음 쓰이는 뜻은 분명히 풍수적으로 좋은 터란 의미다.결국 명당이란 터의 핵심인 혈(穴)이 산천의조아림을 받는 곳(受山水之朝也)이니 그 격이 높아야 당연한 것이다. 정말 명당골은 명당인가.우리의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농촌마을치고 명당 아닌 곳이 거의 없지만 마찬가지로 명당골은 명백히 명당이다.마을에 들어서는 느낌은 오직 맑고 밝다는 것 뿐.
그러니 명당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명당임을 분명히 드 러낸 까닭은 무엇일까.명당이면 남에게 알려지지 않게 숨기는 것이 통례인데 무슨 연유로 만천하에 명당임을 과시하고 있는 것일까.
마을 답사에서는 누구를 만나 얘기를 듣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그런 측면에서 채상민(蔡相敏.76)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할머니와 함께 텃밭을 정리하고 계시던 그분은 명당골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맑고 밝은 기운을 가진 분이었다.사람은 모름지기 저렇게 늙어가야 한다,만나는 순간 내게 닥친 느낌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분에 의하면 이곳이 명당골이 되는 까닭은 『정감록』이 말하는 십승지(十勝地)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란다.다른 기회에 소개하겠지만 사곡면에 속하는 유구와 마곡 사이에 열군데 승지중 하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그러나 이 명당 골을 바로 그 승지라 여기며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그분도 그런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듯 사람에게 친소(親疎)가 있는 것처럼 땅에도 친소가 있는 법이라 자신은 이곳에 친근함을느껴 찾아든 것이라고 말한다.30년전 단양군 영춘에서 살다 그곳의 인연이 다하고 이곳에 인연이 닿아 들어온 것이라는데,영춘역시 승지로 꼽히는 곳이고 보면 이분은 유서깊은 『정감록』 비결파에 속하는 모양이다.그리고 순수하며 순진하다.하기야 순진하니까 『정감록』 을 믿 는 것이겠지만….그의 비합리성을 공박하기 전에 이런 분들은 최소한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터를 고를 때 자신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예컨대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높고 널따란 터를 선호하고, 양순하고 소극적인 사람은 골짜기의 아늑한 양지쪽을 좋아하는 식이다.
하지만 일단 터를 선정해 그곳에 살다 보면 터 역시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을 닮아간다.마을도 양명하지만 할아버지의 집도 깨끗하다.마당에 밥알이 떨어지면 주워 먹어도 괜찮을 것처럼 깨끗하다.말씀도 그러해 말끝마다 『소생이 배운 게 없고 문견이 넓지 못해서』를 후렴처럼 되풀이하는데 그것이 전혀 위선적이거나 겉치레의 겸사처럼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이 땅이좋다는 점을 말해달라는 주문에는 어김없이『선악과 호오를 분명히말할 수는 없는 법이며 명당이란게 지기(地氣)를 말하는 것인즉어찌 알 수가 있 겠소』하는 식으로 땅에 모욕이 될지도 모르는말을 애써 삼가고 있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마을은 북쪽에서 진입하도록 구성돼 일반 농촌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남쪽을 바라보는 앞에 개울이 있고 개울 건너로는 산밑에까지 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이 들판 이름이 싯들(屍野),시체 모양의 논밭이다.이어지는 산이 까마귀산.그래서 이 산의 형국은 까마귀가 시체를 쪼아먹는 모양(飛烏啄屍 또는 金烏啄屍形)으로 표현된다.그 왼편으로는 뱀이 개구리를 쫓아가는 모양의 뱀산이 있고 뱀산 앞에 조금 떨어져 개구리산이라는조그만 둔덕이 있으니 이는 장사추와 (長蛇追蛙)형국이다.둘 다양식 걱정 없음을 상징하는 형국 이름이다.까마귀산 오른쪽은 누에머리산으로 잠두형(蠶頭形)이라는 것인데 이곳은 마을을 외부로부터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하는 수구(水口)막이에 해당된다.풍수용어로는 파(破)라 하 는 것으로 파가 멀거나 벌어지면 좋지않은 법인데 불행히도 이 마을의 파는 상당히 넓게 열려 있는 편이다.당연히 그 허점을 막기 위한 비보책(裨補策)이 있었으니 바로 지금은 경지정리 때문에 베어지고 만 버드나무 숲이 그것이었다. 교묘한 것은 마을 북서쪽에 철승산(鐵蠅山.쇠파리산)이 있는데 파리는 누에에게 아주 해로운 것이므로 그놈들이 누에를 해치지 못하도록 개구리가 막아주고 혹 개구리를 피했다 하더라도다시 시체가 유혹해 결코 누에한테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배려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참으로 그림같은 풍수적 공간구조이자 지세 배치다.다만 한가지 버들숲을 없앤 것이 흠인 셈이다.이런숲을 동수(洞藪)라 하는데 대부분의 마을에서 도로 개설이나 경지정리등의 이유로 이를 없애버린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뱀산과 까마귀산 사이 골짜기에 또 하나의 마을이 그림처럼자리잡고 있다.안터라는 동네인데 이곳은 주로 명당골에서 분가한차남 이하의 자식들이 이주해 생성된 곳이라 한다.겉모양으로만 판단한다면 안터가 더 풍수적 입지를 잘 따르고 있 는 것처럼 보인다.왜냐하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에다 삼면이 산으로감싸여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게 바로 피상적인 관찰이란 것이다.뱀과 까마귀는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인데 그 사이에 끼어 산다면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느냐는 게 그 이유다.
풍수는 결코 상식을 벗어나지 않으며 만약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풍수를 가탁한 술법일 뿐이라는 마을풍수의 큰원칙은 간혹 이런 복병을 만나 어려움을 겪는 수도 있다.
공주에서 마곡사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명당골,그 이름만큼이나풍수 전공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베풀어 준다.하지만 나는 오히려명당이란 터보다 비결파 할아버지의 순수성과 그분이 가꾸던 채소같은 소박함에 더 마음이 끌린다.
(전서울대교수.풍수지리 연구가) 글 최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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