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 하여금 말하게 하다
제3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제자들의 삶은 기성세대나 선생님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으로 가득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느 순간은 때 하나 묻지 않은 순진무구함으로 렌즈 밖 선생님의 시선을 즐겁게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 아이들이 얼마나 부실한 시설 속에서 부족한 교육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엄상빈은 줄곧 학생 생활지도를 담당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힘든 자리였지만 더 치열한 작업을 위해 그는 항상 자처해서 그 자리를 떠맡았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내면으로 다가가는 작업은 생각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성장과정은 기승전결의 수순이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최대한 많이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순간이라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최선을 다해 포착하는 것만이 왕도였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를 분신처럼 여겼다. 조금만 방심하면 훌쩍 커버리는 아이들이었기에 그의 카메라는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동선 위로 자신의 발자국을 겹쳐 만든 사진집 <학교 이야기>.
그 속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밝고 명랑한 분위기의 학생들의 이미지가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입 밖으로 굳이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 누군가의 어두운 사연, 아무도 고치려 하지 않는 병폐 등의 기록이 뚜렷하게 인화돼 있을 뿐이다. 그는 그렇게 미화되지 않은 사실을 촬영하고 보듬어서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학교>
2. 생명의 소리를 기록하다
산과 들을 상하게 하는 인위적인 개발주의가 언제고 우리를 망가뜨리고 말 것이라는 걱정이 들자 이 모든 것을 기록해둬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그리하여 그는 속초, 고성, 양양의 환경 변화를 꾸준히 기록해 ‘생명의 소리’라는 타이틀로 작품집을 냈다. 20년간 기록해온 자료들 중 100여 점의 흑백사진을 엄선해 내놓은 환경 사진집 <생명의 소리>를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 이런 작업을 해온 것이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서서히 환경을 망치며 걸어온 우리들의 행적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과오를 코앞에 두고 반성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 아니겠는가.
사진 속 풍경은 아찔하다. 개발론자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청초호, 골프장이며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제 모습을 서서히 잃어가는 산, 오염된 물이 흐르는 강, 침출수가 넘치는 쓰레기 매립장 등등 20년간 진행되고 있는 도시의 개발 풍경은 결코 순탄해보이지 않는다. 해년마다 연어 떼가 넘쳐났던 강어귀에 정체모를 오염물이 층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추하다 못해 절망스럽다. 사진을 계속 감상하다 보니 마음이 심란하다. 사진 속 상황이 보는 이의 마음을 답답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듯 진실한 환경 다큐멘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 작업을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마음의 각오를 해야 한다. 그 각오가 곧 생명의 소리를 무심히 넘기지 않게 되는 작은 실천이다. 밝은 렌즈를 가진 그가 이타적인 귀까지 갖췄으니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생명들이 앓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계속)
객원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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