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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월스트리트와 메이저리그의 공통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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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맨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 경제 칼럼니스트 마이클 루이스에게서 배운다

미국 증권가이자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Wall street)와 미국 국기(國技)이자 세계 프로스포츠의 꽃 메이저리그(Major League). 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둘 다 돈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다. 둘째, 누구나 재미로 한(본)다면서도 목숨을 건다. 셋째, 기적적인 성공보다 저주할 만한 실패가 훨씬 더 자주 벌어진다는 점이다. 미국 사람들이 종종 하는 우스갯소리이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트로트와 힙합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지는 월스트리트와 메이저리그의 관계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가 마이클 루이스일지도 모른다. 그는 미국의 명문대 출신으로 한때 투자은행(증권사) 직원을 꿈꿨다. 그러다 미국의 대표적 경제 칼럼니스트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투자은행 경험을 살려 지난 1986년에 펴낸 <라이어스 포커>가 크게 인기를 끌어서였다. 이 책은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투자은행 입문서로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고 있을 정도다. 반면 <머니볼>은 그가 2003년에 펴낸 책이다. 이 책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이룬 기적을 다뤘다. 이 책 역시 발간 직후부터 계속해서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마이클 루이스는 아마 월스트리트와 메이저리그에 대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가진 유일한 저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머니볼>은 야구 관련 서적인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책 전반에 걸쳐 숱한 야구 용어와 야구 역사가 등장한다. 야구에 관심이 없으면 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은 야구 서적 그 이상이다. 어슬레틱스의 구단주 빌리 빈이 의외의 선수들을 고르고, 이들을 최고의 재목으로 키우는 과정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존 야구계의 통념들을 가차 없이 내던져 버린다. 기존 구단이나 스카우터들은 프로야구 선수의 스피드와 장타력을 중시한다. 그러나 빈은 선구안과 출루율을 중시한다. 결국 얼마나 진루를 잘하느냐를 핵심적 능력으로 꼽은 것이다.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에 가려져 지나치게 저평가 돼 있는 선수들을 찾아내는 것이 그의 성공 비결이었다.

이 점은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가치주 혁명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1960년대 이후 워렌 버핏을 필두로 한 일련의 투자가들은 성장주 중심의 단타 매매라는 시장 분위기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장기적 안목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주식을 고르는 것이 훨씬 투자 수익률이 높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남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대상을 골라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점이야말로 빈의 전략과 가치주 투자의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머니볼>은 투자 전략서인가? 실은 그 이상이다. 오늘날 메이저리그에서 보통 명사가 된 머니볼(money ball)은, 투자 대비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야구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유망한 선수를 고르는 것 이상의 판단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슬레틱스팀은 미국 최고의 부자 구단이라는 뉴욕 양키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다. 1년 선수 연봉은 양키스의 3분의 1, 전체 재정은 10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성적에서만큼은 밀리지 않는다.

<머니볼>이 출간될 당시는 4년 연속 플레이오프전에 진출할 정도였다. 그 후에도 여전히 강팀의 면모를 간직해왔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유망 선수 선발 이상의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빌리 빈은 한 물 간 선수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실력으로 은혜에 보답했음은 물론이다. 그런가 하면 몸값이 높아진 일부 선수들은 다른 구단으로 넘겼다. 그렇게 해서 어려운 살림살이를 극복해왔다. 일종의 경영관리 혁명을 일궈온 셈이다. 그 결과 머니볼의 전통은 다른 구단으로도 퍼져나가고 있다. 빈 밑에서 경영 수업을 한 이들이 다른 구단의 구단주나 경영진으로 스카우트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머니볼>은 경영전략서에 가깝다.

메이저리그의 기적적 성공을 다룬 <머니볼>과 달리, <라이어스포커>는 월스트리트의 문화를 다룬 책이다.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충돌한다는 점에서, 그 문화는 저주받은 문화다. 이 책이 묘사한 월스트리트는, <월스트리트>라는 영화의 게코 같은 캐릭터가 득실거리는 곳이다(이 영화에서 게코로 분한 마이클 더글러스는 실감나는 증시 큰 손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은 살로몬브라더스사. 미국 증시가 빅뱅을 시작하던 1980년대 채권 부문에서 가장 명성을 떨치던 투자은행이다. 이 곳 41층 트레이딩 룸이 주무대다. 이 회사 회장인 존 굿프렌드와 채권팀장 존 메리웨더을 위시해, 채권팀원들이 주역이다. 반면 마이클 루이스는 이 곳을 동경하는 신입사원이다.

제목인 라이어스 포커는 채권팀에서 즐겨하는 게임으로,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거래의 본질을 상징하는 단어다. 원래 라이어스 포커는 상대편에게 자신의 패를 보이지 않으면서 상대편이 원하는 무늬나 숫자를 내놓는 게임이다. 거짓말과 허풍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만일 상대방이 패를 들춰 거짓말이나 허풍이 들통 나면 위태로워진다. 동시에 상대방이 잘못 짚었을 때는 벌칙이 가해지는 방식이다. 이들은 지폐의 일련번호를 가지고 이 게임을 즐겼다. 물론 천문학적인 판돈을 걸고.

<머니볼>이나 <라이어스 포커>는 사실 어느 한 시기만을 다루지만, 후일담이 더 흥미를 끈다는 공통점도 있다. 두 논픽션 서적의 주인공들이 여전히 메이저리그와 월스트리트를 무대로 활동중이기 때문이다. 빌리 빈은 여전히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구단주로 있다. 그가 구현한 머니볼의 위력도 여전하다. 2006년 어슬레틱스팀은 디비전 챔피언으로 월드 시리즈에 오르기도 했다.

<라이어스 포커> 주역들은 우울한 상황을 맞고 있다. 이 소설 출간 후 살로먼브라더스는 채권팀의 국채부정매입 사건으로, 트래블러스그룹에 인수된다. 이 때 회사를 떠난 존 메리웨더는 헤지펀드인 LTCM을 설립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명을 끌어들여 유명세를 탄 이 회사는 한 때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러시아 재정 위기 당시 파산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 이 일로 그는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 전반에 금융 불안 상황을 몰고 오기도 했다. 이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한 책이 바로 <천재들의 실패>(로저 로웬스타인, 동방미디어, 2001)다. 그 후 다시 헤지펀드를 설립해 재기에 성공하는가 했지만, 최근에는 서브프라임 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미 금융시장에서 메리웨더가 불운한 천재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머니볼>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재능 있는 경제 칼럼니스트가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메이저리그의 한 구단을 심층적으로 다뤄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떠난 월스트리트에 대해서는 불길한 저주의 말들을 던져놓은 반면 메이저리그에 대해서는 기적적인 성공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았다는 점이다. 그 역시 돈 냄새보다는 땀 냄새가 더 좋았던 것일까?

김방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