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의 생물학 카페]포레족의 비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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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39면

1950년대 뉴기니의 포레족 사이에선 식인(食人) 의식 때문에 뇌에 구멍이 뚫려 죽는 쿠루병이 유행했다. 국제쿠루재단

1950년대 뉴기니의 포레족 사이에서는 쿠루(Kuru)라는 이름의 독특한 질병이 유행하고 있었다. 쿠루에 걸린 이는 모두 사망했고, 이들의 뇌에서는 예외 없이 이상한 구멍들이 발견되었다. 전 세계에서 유독 포레족에게서만 쿠루가 나타났던 것은 그들이 행했던 식인(食人) 의식 때문이었다. 포레족은 쿠루에 걸려 죽은 사람의 몸을 먹어 다시 쿠루에 걸리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비록 쿠루의 치료법은 알지 못했지만 감염 경로를 안 뒤 쿠루를 예방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했다. 식인 습관을 없애자 쿠루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85년 2월 제이로라는 젊은 청년의 시체를 부검했던 의사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제이로의 뇌는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치 쿠루 환자들처럼. 비슷한 시기, 같은 증례들이 전 세계에서 약 80건이 보고되었다. 쿠루는 식인 습관의 폐지 이래 사라진 것으로 여겼는데 왜 갑자기 젊은이 수십 명의 뇌에 구멍이 뚫린 것일까? 이들은 모두 왜소증 치료를 위해 기증받은 사체(死體)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성장호르몬을 투여받은 사람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증자의 뇌 속에 있던 어떤 물질이 이들에게 쿠루를 옮겼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막을 기증받은 이들에게서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비록 식인으로 인한 쿠루는 사라졌지만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인한 신체조직의 이식은 쿠루의 망령을 되살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후의 연구를 통해 쿠루나 이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의 원인은 자가 증식하는 성질을 가진 프리온이라는 묘한 단백질 때문임이 알려졌다. 원래 프리온은 중추신경 속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단백질일 뿐이다. 그런데 이 프리온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변형되면 뇌세포를 죽이고 대신 그 자리에 공허한 구멍만 남겨 놓는 독성물질로 작용한다. 또한 변형 프리온은 정상 프리온과 결합해 이들을 변형 프리온으로 빠른 시간 내에 변환시킨다. 또한 프리온은 보통의 단백질과 달리 열을 가하거나(포레족은 시신을 불에 구워 먹었다), 화학약품으로 처리해도(포르말린 용액에서도 견딘다) 쉽게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체내에 유입되는 경우 죽음을 피하기란 힘든 일이다.

만약 프리온이 인체 내에만 존재한다면 그다지 걱정할 일은 못 된다. 사람을 먹지 않고 합성 호르몬을 사용한다면 변형 프리온이 다른 이에게 옮겨갈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프리온은 인간뿐 아니라 대부분의 포유동물에게도 존재하며, 종간의 경계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변형 CJD인 인간 광우병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각에서는 쇠고기를 먹어 인간에게 프리온 관련 질환이 나타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는 사실을 들어 광우병 위험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건강 보호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할 국가가 그런 주장을 하는 건 문제다.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기에 충분하다.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국민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모여드는 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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