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리더십과 지속가능한 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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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36면

한 나라의 경제가 빠르고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할 때 흔히 ‘기적’으로 부른다. 잘 설명이 안 되고 되풀이되기 어렵다는 뜻에서의 기적이다.

1950년 이후 최소한 25년 동안 계속해서 연 7% 이상 성장한 나라가 13개국으로 조사됐다. 일본을 비롯해 싱가포르·홍콩·한국·대만 등 아시아 네 호랑이, 중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 등 아시아 여타 4개국과 중동의 몰타와 오만, 중남미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보츠와나가 그 면면들이다. 이들의 성장신화는 정말 되풀이될 수 없는 기적일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스탠퍼드대) 교수가 이끄는 21명의 성장발전위원회(CGD)는 지난 2년 동안 이들 13개국의 성장 과정을 심층 분석한 ‘성장보고서: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전략’을 최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이들 13개국의 빠르고 지속적인 성장이 결코 ‘기적’이 아니며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이 확고하고 글로벌경제를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가 고물가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제를 살려내라는 다그침이 지구촌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판국에 이 무슨 성장복음인가.

13개국 가운데 일본과 싱가포르·홍콩·한국·대만·몰타 등 6개국만 ‘고소득 산업화 경제권’에 속하고 나머지는 여전히 개발도상에 있다. 인도와 베트남이 최근 10~15년간의 지속 성장으로 이 그룹에 빠르게 합류 중이다. 이들의 성장 과정과 그 동학(動學)은 나라마다 달라 한데 묶어 일반화가 어렵다. CGD는 글로벌경제를 잘 활용하고, 거시경제 안정과 높은 수준의 저축과 투자, 유연한 국내시장, 그리고 믿을 만한 정부 등 다섯 가지를 이들 성공신화의 공통요소로 꼽았다. 그러나 고도성장 시기에 수입장벽을 쌓거나(브라질), 외국인 투자를 제한(일본과 한국)하는 경우도 있었고, 정부의 산업정책이 부패를 심화시켜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강하고 ‘믿을 만한’ 정부의 이면에서 민주화가 희생되고 군사정부 내지 권위주의 체제에 의한 ‘강요된 합의’도 없지 않았다.

과거 성장에 대한 분석보다 앞으로의 지속적 성장과 관련해 던지는 두 개의 메시지가 주목을 끈다. 지속적 성장에는 국가지도자의 리더십과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정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그 하나다. 성장에 독불장군은 없다. 기술과 지식을 도입하고 바깥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선 글로벌경제와 밀접하게 교류하며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 다른 하나다. 글로벌경제라는 닻에 몸을 단단히 묶고 파도타기에 능숙해지라는 주문이다.

경제성장은 경제학을 넘어선다. 정치의 모래판 위에 경제적 맨션을 지을 수가 없다. 성장의 동인(動因)을 창출하고 지속시키는 리더십과 협치(協治)가 그 요체다. 성장의 리더십은 일관된 성장전략을 수립하고 이 비전을 국민과 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면서 국민을 이끌고 가는 능력이다.

국민적 지지의 안전판으로 압도적 여당 1당 체제가 활용되기도 했다. 중국·대만·싱가포르·인도, 그리고 일본의 자민당이 그랬다. 그러나 갈수록 다당화하는 현실에서 이야말로 되풀이되기 힘든 역사의 유물이다. 성장이 지속될수록 분배 욕구와 열망은 강하기 마련이고,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도 이 둘을 조화시키는 정책의 묘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성장하는 경제는 ‘이동하는 표적’이다. 어제의 좋은 정책이 오늘에는 나쁜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정부의 역할 또한 너무 적어도 안 되고 너무 많아도 안 된다. 안정화·민영화·자유화라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맞서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정부의 필요성도 새삼 강조되고 있다. 훌륭한 거버넌스는 성장을 도울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발전이다.

CEO가 기업 실적을 내는 것과 나라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별개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미국의 후버나 태국의 탁신,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등 CEO 출신 지도자의 실패담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CEO적 마인드에서 벗어나 소통과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성장의 리더십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라경제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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