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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에 빠졌던 유년의 절망 탈출 9개의 메이저 타이틀 거머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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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26면

1971년 3월 21일 잭슨빌에서의 포효. 게리 플레이어가 잭슨빌 오픈 17번 홀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뒤 주먹을 불끈 쥐 어보이고 있다. 그는 퍼팅뿐 아니라 모든 샷에서 견고함을 자랑한 골퍼다.

올해 마스터스의 그린 재킷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트레버 이멜먼이 입었다. 요즘 미국 PGA 투어나 유러피언 투어 등 주요 투어에서 남아공 선수의 우승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구 끝자락에 있는 남아공에선 훌륭한 골퍼가 끝없이 나오고 있다. 어니 엘스와 레티프 구센 등 30대 선수뿐 아니라 로리 사바티니와 팀 클락 등 야심 찬 젊은 선수들이 세계 골프 주무대로 등장하고 있다.

남아공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게리 플레이어

이들 뒤엔 ‘블랙 나이트(black knight)’ 게리 플레이어가 있다. 검정 옷을 즐겨 입으며 변방인 남아공에서 태어나 골프의 세계 최고봉을 홀로 등정한 그는 고국의 후배들에게 비전과 영감을 주는 대부다. 이멜먼도 마스터스 우승 뒤 플레이어에게 가장 큰 감사를 보냈다. 플레이어는 1m70㎝로 옛날 선수치고도 작았지만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이름부터 플레이어니 실력자임을 직감할 수 있으리라.

게리 플레이어(가운데)는 개성이 강한 아널드 파머(왼쪽)와 잭 니클로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냈고 실력으로는 이들과 함께 PGA 빅3 시대를 열었다. 2001년 마스터스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세 노장.

1960년대 미국에선 TV가 대중화되면서 스포츠의 모습이 달라진다.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스타 플레이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골프에선 3총사가 나온다. 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로스, 그리고 플레이어다.

잘생긴 외모에 이글거리는 눈빛을 가진 파머는 필드의 제임스 딘이었다. 그는 ‘아니의 군단’이라는 팬을 끌고 다닌 골프의 첫 수퍼스타였다. 곰처럼 뚝심 있는 니클로스는 엄청난 장타에 정교함을 보태 파머의 카리스마와 정면으로 대적했다. 두 선수 사이에 플레이어가 있었다.

당시 미국 필름을 보면 플레이어는 개성 강한 두 마초 사이에 끼인 감초처럼 보인다.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에 끼어든 여우 정도의 모습이었다. 외국인인 데다 덩치도 왜소했고 샷 거리도 짧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TV는 파머와 니클로스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TV는 환상이다. 미국 미디어에 비친 플레이어의 모습은 진실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거인이었다.

플레이어는 35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년기는 ‘골프의 위대한 정신’으로 꼽히는 벤 호건과 비슷하다.

호건도 어릴 적 아버지의 권총 자살 장면을 목격했고 항상 그 기억 때문에 가위눌렸다. 플레이어는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의 꿈을 꾸고 새벽에 깨어 있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광부였다. 가난했으며 어머니를 잃은 아들에게 많은 관심을 주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 감당하기 벅찬 벽을 만나게 되는 경우 결과는 크게 두 가지다.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해 인생의 패자가 되는 경우가 첫 번째다. 대부분 그렇게 된다. 평생 넘을 수 없는 벽을, 자신의 환경을 한탄하면서 지낸다.

두 번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결국 벽을 넘는 경우다. 이 벽을 넘으면 보통사람보다 한두 단계 높은 정신력을 갖게 된다. 웬만한 걸림돌은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된다.

호건처럼 플레이어도 두 번째 경우였다. 다행히 플레이어의 아버지는 빚을 내 아들에게 클럽을 사줬다. 플레이어는 골프에 그의 에너지를 바쳤다. 14세 때 처음으로 라운드를 했는데 첫 3개 홀에서 모두 파를 했다고 한다. 그는 남아공 주니어 골프를 석권했고 프로로 전향했다. 그래도 남아공은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그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골프에 대한 꿈을 안고 영국으로 건너간 스무 살 청년 플레이어는 영국 프로들로부터 “빨리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들을 정도로 평범한 실력이었다. 그런 그가 1년 만에 영국으로 돌아와 서닝데일에서 열린 던롭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호건은 “여름에도 날이 짧아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 연습장에 가고 싶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플레이어도 호건과 같은 완벽주의 사나이다.
플레이어는 3년 후인 59년 디 오픈에서 우승, 첫 메이저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65년엔 마스터스에서 파머를 넘어뜨리면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 선수는 5명뿐이다. 진 사라센, 벤 호건, 니클로스, 타이거 우즈와 플레이어.
플레이어는 니클로스를 뛰어넘은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파머보다는 훌륭한 골퍼였다. TV 화면에서 플레이어를 압도하는 것 같았던 파머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하지 못했다. 플레이어는 메이저 대회 9승으로 통산 4위에 올라 있다.

파머는 골프를 대중 스포츠로 발전시켰지만 플레이어는 골프를 세계 스포츠로 발전시켰다. 플레이어는 ‘검은 기사’ 말고도 ‘골프의 국제 대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골프를 전도했다. 그의 이동 거리는 1400만 마일(약 2253만㎞) 이상이다. “인류 중 가장 많이 여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자랑한다. 그는 전 세계를 돌며 166승을 했다.

조국에 대한 사랑도 잃지 않았다. 상금도 크지 않은 모국의 내셔널 타이틀에 빠지지 않고 나갔다. 남아공 오픈에서 그는 무려 13승을 기록했다. 같은 남반구에서 열린 호주 오픈에서도 7승을 거뒀다. 남반구에서의 기록만 보면 그는 니클로스나 우즈보다 뛰어난 선수였다. 니클로스나 우즈가 플레이어만큼 돌아다녔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다.

플레이어는 또 다른 고초도 겪었다. 그는 남아공 인종차별정책의 희생자였다. 플레이어는 “나는 차별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데 남아공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백스윙 톱에서 전화번호 책으로 등을 맞았고 퍼팅하려고 하는데 관중이 던진 공에 맞았다. 25㎝짜리 퍼트를 하는데 누군가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는 바람에 공을 뺐고 결국 1타 차로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 우승을 놓쳤다. 매일 호텔에서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모든 고통을 견뎌냈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라고 한다. 그는 화를 참는 연습도 한다. 플레이어는 “고속도로로 가 가장 느린 트럭이나 할머니가 모는 저속차량 뒤를 따라가라. 추월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평정을 되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플레이어는 올해 72세다. 1년을 1홀로 치면 그는 4라운드를 다 돈 셈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선 77타를 쳤다. 아직도 한 손으로 푸시업을 하면서 우승을 준비하는 강골이다. 챔피언스 투어에서 우승권에 가기도 하며 진짜로 우승할지도 모른다.

플레이어가 주는 팁 한 가지. 슬럼프를 극복하는 길이다.

“자신이 리듬 있고 아름다운 스윙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73년 엄청난 슬럼프에 빠졌는데 크리스티 오코너라는 선수의 부드러운 스윙을 마음에 새기고 내가 그인 것처럼 스윙을 했다. 이듬해 마스터스에서 우승하고 디 오픈에서도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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