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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판다가 넘고 돈은 할리우드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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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08면

쿵푸 팬더(Kung Fu Panda) 감독 존 스티븐슨·마크 오스본 목소리 출연 잭 블랙·더스틴 호프먼·앤젤리나 졸리·청룽 상영시간 94분 개봉 6월 5일 제작연도 2008

드림웍스가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를 만든 것은 물론 베이징 올림픽 때문이다. 올림픽과 중국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용해 중국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쿵후와 판다를 결합한 문화상품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이다. 단지 그뿐일까. 어떤 나라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열린다고 해서 그 나라의 특징을 살린 문화상품이 반드시 나오지는 않는다. ‘쿵푸 팬더’가 만들어진 것은 오히려 ‘쿵후’라는 중국의 문화상품이 이미 서구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쿵후를 기반으로 한 홍콩 스타일의 액션이 이미 할리우드를 포함한 전 세계 영화계에서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미국 포르노 산업의 흥망성쇠를 그린 ‘부기 나이츠’를 보면 10대 시절의 주인공이 숭배하는 영웅으로 이소룡이 나온다. 멀쩡한 백인 청년이 동양인인 이소룡을 우상으로 받든다고? 물론이다. ‘맹룡과강’과 ‘용쟁호투’가 서구에 소개된 후 이소룡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괴성을 지르며 거대한 백인 싸움꾼들을 때려눕히는 이소룡은, 인종 여부를 떠나 강해지고 싶은 욕망을 가진 모든 소년의 영웅이었다.

‘펄프 픽션’으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킬 빌’에서 수많은 동양 액션영화를 패러디했던 퀜틴 타란티노 감독은 어린 시절 흑인 구역과 차이나타운의 극장에서 홍콩 무술영화를 섭렵했다. 타란티노만이 아니다. 비디오로도 보급된 홍콩 무술영화는 소수 매니어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 무술영화의 매니어였다.

매니어들 위주로 소비되던 홍콩 무술영화가 주류로 성장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홍콩 무술영화의 매니어들이 할리우드의 실세가 되었다는 것. 또 하나는 청룽(成龍)·리롄제(李連杰)·훙진바오(洪金寶) 등이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쿵후를 이용한 다양한 콘텐트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청룽의 전략은 강력한 무술이 아니라 서커스 같은 동작을 구사하면서, 무성영화 시절의 스타 버스터 키튼을 연상시키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해 홍콩 무술영화의 주요 관객인 흑인들이 좋아할 배우를 공동주연으로 내세웠다. 그런 전략으로 ‘러시아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할리우드에 연착륙한 청룽은 ‘상하이 눈’ ‘턱시도’ 등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액션과 코미디가 넘치는 오락영화로 다양한 관객을 사로잡았다. 청룽의 쿵후는 상대방을 파괴하는 무기가 아니라, 뮤지컬의 춤처럼 관객을 매료시키는 우아하고 활기찬 율동에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쿵후는 매니어들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 쿵후는 서구의 대중이라면 누구나 알고 즐길 수 있는 익숙하고 정겨운 소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쿵푸 팬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은 이미 마련돼 있었다. ‘쿵푸 팬더’의 이야기는 이미 서구의 아이들도 아는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뚱뚱하고 게으른 판다 포가 우연히 쿵후세계 비법이 적혀 있는 ‘용 문서’의 전수자로 낙점된다. 시푸 사부와 ‘무적의 5인방’이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현인 우그웨이는 그것이 운명이라면서 포를 시푸에게 맡기고, 포는 갖은 고생을 통해 고수로 거듭나 마침내 악당을 물리친다. 이것은 우리가 ‘사형도수’ ‘취권’ 등 전통적인 쿵후 영화에서 항상 보았던 이야기다. 이미 홍콩의 무술영화는 그 단계를 뛰어넘어 갖가지 스토리로 변주되고 있지만, 우리보다 늦게 홍콩 무술영화에 탐닉하게 된 서구에서는 ‘쿵푸 팬더’ 정도의 이야기가 가장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관객들도 ‘쿵푸 팬더’를 통해 동양적인 이야기를 쉽고 편하게 받아들이면서, 판다가 펼치는 갖가지 재롱과 코미디를 즐긴다.

얼마 전 개봉했던 ‘포비든 킹덤’ 역시 일가족이 즐길 수 있는 쿵후 영화다. 최고의 홍콩 스타 청룽과 리롄제를 함께 출연시킨 ‘포비든 킹덤’은 중국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판타지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은 청룽과 리롄제가 아니라, 백인 소년이다. 즉 ‘포비든 킹덤’은 백인 소년이 동양적 공간에서 성장하며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판타지인 것이다.

‘포비든 킹덤’과 ‘쿵푸 팬더’의 전략은 동일하다. 주류에 진입한 쿵후와 무술배우를 이용하여 서양 관객을 공략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익숙한 아시아 시장도 함께 파고드는 것. 거기에 더해 ‘쿵푸 팬더’는 홍콩 무술영화의 스타일을 현란한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발상과 테크닉에 주목할 만하다. 홍콩 무술영화의 할리우드 버전을, 그것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는 것은 분명히 흥미로운 경험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스크린에 재현한 ‘스피드 레이서’를 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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