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 끝났다” 했을 때가 기회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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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사에 불멸의 2000탈삼진을 기록한 송진우가 환호하는 관중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전광판에 2000탈삼진이란 글이 선명하다. [대전=연합뉴스]

8회 초 2사 볼카운트 2-2. 마운드엔 한화 좌완 투수 송진우(42), 타석엔 우리 히어로즈 송지만이 버티고 서 있었다.

몸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구가 들어오자 송지만이 배트를 크게 휘둘렀고 공은 포수 미트에 꽂혔다. 송진우의 통산 2000탈삼진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나이는 만 42세3개월20일이다. 하지만 이는 호적에 올라 있는 나이다. 실제 생년월일은 1965년 2월생, 우리 나이로 44세다. 심판 중에서도 그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세 명에 불과하다. 해를 더할수록 힘이 솟는 비결은 무엇일까.

◇부단한 자기계발=송진우는 단 한 시즌도 20승을 해본 적이 없다. 좌완 투수로 제구력은 좋지만 선동열(삼성 감독)과 최동원(한화 코치)의 강렬함엔 미치지 못했다. 박찬호(LA 다저스)가 가진 강속구도 그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송진우는 이미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승(206승)을 넘어섰으며 100세이브와 2000K 훈장까지 달게 됐다. 선동열과 최동원은 화면 속의 전설이다. 송진우는 현재 진행형이다.

마흔 넘어서 하는 야구는 스무 살 때와는 다르다. 송진우의 변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1992년 다승왕과 구원왕을 동시에 차지한 뒤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김영덕 감독은 5일 간격인 선발 로테이션 중간에 그를 구원투수로 활용했다. 자연히 스피드가 떨어지고 공 끝은 무뎌졌다. 이후 93년과 94년 각 6승씩만 거두자 ‘송진우는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때부터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130㎞대의 직구로도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요령을 깨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변화구(체인지업)를 배웠고 홈플레이트를 더욱 잘게 쪼개 가며 송곳 제구력을 늘려나갔다. 2000K의 마지막 결정구도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준비한 서클체인지업이었다.

◇참는다, 또 참는다=송진우는 타고난 자기 관리 능력 덕에 커다란 부상을 당한 적이 거의 없다. 부상이 없다는 것은 행운이기도 하지만 자기 관리가 엄격하고, 의지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90년대 초반의 일화. 그는 왼발바닥 수술을 한 뒤 마운드에 너무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아프지 않으려면 마취제를 맞아야 한다고 의사가 권유했으나 거절했다. 발이 너무 아파 오전 1시에 잠에서 깬 그는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바둑판을 펼쳐 혼자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는 “뭐 저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361로의 바둑판을 보면서 통증을 참고 마운드에 오르고 싶은 욕망을 다스렸다고 한다. 그의 그런 근성이 99년 한국 스포츠계를 발칵 뒤집었다. 선수협회 파동에서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당당히 리더로 나선 것이다. 나서는 걸 싫어하는 송진우에게 모든 선수가 회장 자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회장으로서 선수협을 훌륭히 이끌어 오늘날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끌어 올렸다.

◇움직이고 준비한다=송진우와 원정 숙소를 썼던 후배들, 그리고 동료들은 “도대체 방에서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고 움직이고 스트레칭한다. 알고 보면 다음 마운드 등판을 하루 종일 준비하는 셈”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어떤 선수라도 마흔이 넘어 허리 사이즈를 그대로 유지하긴 힘들다. 송진우의 허리 사이즈는 20년 전과 변함없이 32인치다. 담배는 일절 입에 대지 않는 데다 술도 어쩔 수 없는 자리에서 한 모금 목을 축이는 정도다.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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