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미>유행,週期냐 혁신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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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변화를 주면 줄수록 원래 모양과 같아진다」는 프랑스 속담이있다.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과도 맥이 통한다.의류나 장신구는 물론 자동차.가구.전자제품들도 그 디자인이 줄기차게 바뀐다.좇아가지 않으면 시대에 뒤지는 것같고 좇아가자니 소비자입장에서 분통이 터진다.디자인은 과연 기술혁신(innovation)이냐,아니면 수요창출을 노린 유행의 사이클(주기)이냐.
성능만으로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혹하고 세련된 디자인 개발에기업들이 다투어 거금을 쏟고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50년대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패션을 「사회적 수요의 산물」로 일찌감치 정의했다.패션과 그 사이클은 소비를 하나의 「사회적 행동」으로 볼 때 비로소 설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신분이나 부(富)를 과시하는데 제품의 가격은 2차적 인 고려대상이다.패션의 세계에서 소비자들은 스스로의 주관보다도 남들이 무엇을 사서 갖고 있느냐에 관심을 더 쏟는다.
이 「사회적 수요」에는 두가지 효과가 작용한다.남들이 다 사니까 나도 빠지지 않기 위해 덩달아 사는 편승(便乘)구매효과(bandwagon effect)가 그 하나다.반대로 남들이 다가져 너무 흔하기 때문에 구매를 기피하고 혼자서 난체하는 「속물효과」(snob effect)가 다른 하나다.남들보다 뭔가 특이하고 달라보이려는 욕구,그리고 끊임없이 이들을 흉내내고 이들과 같아지려는 욕구간의 다이내믹한 게임의 과정이 곧 패션 사이클이라는 얘기다.
기능을 향상시킨 디자인혁신도 적지않지만 새 수요창출 또는 가격을 올리기 위해 디자인만 바꾸는 경우도 허다하다.혁신에 따른디자인이라도 쓸모가 적은 군더더기 장식만 붙여놓는 경우도 적지않다. 경제학자 볼프강 페센도퍼(노스웨스턴대학)는 최근 「디자인 혁신과 패션 사이클」이란 한 연구에서 새 패션이나 디자인은뭔가 달라보이도록 차별화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품질 향상과는 무관하다고 분석한다.따라서 효율면에서 패션의 사이클은 사회적 낭비라는 주장이다.패션은 곧 고가(高價)며,값의 하락은그 패션의 죽음을 의미한다.하이패션일수록 비싼 재질을 사용한다.70년대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피오루치는 중상층 젊은이를 위한패션으로 인기를 끌었다.고객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저가품을 디자인하다 그 이미지가 실추,도산했다.
세계유행의 본산(本山)들은 패션제품을 3단계로 구분해 공급한다.새 패션은 최고급제품에 국한한다.최고급단계에서 시들해지면 중급-대중보급품으로 건너온다.프랑스인들은 하이패션의 브랜드를 「그리프(griffe)」로 부른다.손으로 빚은 예 술품이라는 함축이다.확대재생산.사이클과는 거리가 먼 창조적 재능의 산물이다.실제 소비대중이 접하는 패션 브랜드는 그 보급판이나 유사품이 주류를 이룬다.개성과 혼(魂)이 담기지않은 브랜드는 단순한상표에 불과하다고 한다.이 브랜드의 허상(虛像)에 덩달아 매달리는 것은 「차별화」도,혁신도 아닌 사회적 비경제(非經濟)라는분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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