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 칼럼

이스라엘·시리아, 평화를 위한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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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8년여에 걸친 무력 대치 끝에 평화회담을 재개했다. 이를 레임덕에 빠진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자신의 부패 스캔들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뿐 아니라 시리아가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사건과 관련, 국제사법재판소에 서게 되는 것을 모면하기 위한 술수라고 봐서도 안 된다. 이스라엘·시리아 평화협정은 전략적으로 두 나라에 모두 필요하며 양국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시리아 집권 바트당은 두 가지 중요한 경험을 했다. 하나는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이 1967년 이스라엘과의 중동전쟁에서 골란고원을 빼앗긴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의 아들인 바샤르 알아사드 현 대통령이 2005년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 시리아군을 레바논에서 철수한 것이다. 골란고원을 되찾고 레바논에서 시리아의 주요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시리아 대통령의 주요한 전략적 목표일 뿐만 아니라 시리아 정권의 정통성 확보나 바샤르의 지도력 행사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 바샤르 대통령의 최우선 정책 목표는 아니지만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전제조건이다. 미국과의 화해, 레바논에서 시리아의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는 것, 그리고 골란고원을 평화적 수단으로 회복하지 못할 경우 발발할 수 있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피하는 것이 상위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시리아 정권은 8년 전의 평화협정을 깨뜨렸던 갈릴리해 동쪽 국경 문제에 대해 양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양국 평화협정은 이스라엘에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 전면전이 붙는다면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도 헤즈볼라와의 일전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시리아는 골란고원의 교착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군사적 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이스라엘 주요 지역이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런 불길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란 역시 이스라엘 공격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 뻔하다.

이 지역을 둘러싼 전략적 조건은 분명 8년 전보다 훨씬 복잡하다. 당시 이스라엘·시리아 평화회담의 주요 의제는 골란고원을 둘러싼 안보 협정, 그리고 레바논에 정착한 이스라엘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시리아가 레바논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주는 문제 정도였다. 시리아와 이란의 동맹은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시리아가 강제적으로 레바논에서 철군한 것은 이스라엘에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8년 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회담에서는 시리아와 합의에 도달할 경우 레바논에 이스라엘인들이 자동으로 정착할 수 있고, 이스라엘 북쪽 국경을 위협하는 헤즈볼라의 위협도 종식될 것이라는 데까지 의견 일치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리아와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레바논에 평화가 정착되진 않을 듯하다. 헤즈볼라가 시리아 점령 시기에 번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엔 지금과 같은 놀랄 만한 정치적 역량을 갖지 못했다.

이스라엘·시리아 평화협정은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더 광범위한 평화협정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란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아랍 국가가 이스라엘과 평화관계를 구축한다면 지역 혼란을 부추기려는 이란의 전략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적 해결을 추구하거나 경직된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강요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미국이 지원한 이스라엘·시리아 평화협정이 타결된다면 지역 평화를 깨려는 일부 다른 국가들을 지역 협력과 안보의 시스템 안에 끌어들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슐로모 벤아미 전 이스라엘 외무장관
정리=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