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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81. 다시 시작된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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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남편 아르만도 게디니와 함께 스페인 여행 때 찍은 사진.

아르만도 게디니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역업을 하는 비즈니스맨이다. 유머가 넘치고 부드러운 남자였다. 그런 그가 나에게 찬사를 보내는 데 딱히 그를 거절할 만한 흠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마음이 끌렸던 게 사실이다.

나는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결혼에 대한 어떤 기대도 희망도 가질 수 없을 만큼 지쳐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유럽 몇 나라에 출장을 가게 됐고, 내게 그 여행의 동반자가 돼 달라고 했다. 마침 형부와 함께 스페인에서 살고 있던 둘째 언니도 만날 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와 함께 로마·파리·런던 등을 여행한 뒤 나는 스페인 언니 집에 머물렀고, 그는 혼자 뉴욕으로 돌아갔다. 굳게 닫혔던 내 마음도 여행을 하며 어느 정도 열렸던 것 같다.

두 달 정도 스페인에 머물다가 돌아왔다. 그가 마침내 적극적인 프러포즈를 했다. 프러포즈가 재미있었다. “당신이 아이를 하나 낳아준다면 아이 몸무게와 같은, 당신이 원하는 보석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결혼할 마음이 별로 없었고, 이미 정아가 있어 아이를 낳을 생각은 더욱 없었는데 그 프러포즈를 받고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1976년 2월 드디어 결혼했다. 그의 소원대로 아기도 가졌다. 보석을 받을 바에야 10캐럿쯤 되는 큼지막한 걸로 받겠다는 심산으로 정말 열심히 먹었다. 아기가 크면 클수록 큰 보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나이였기에 의사가 각별히 주의하라고 했다. 남편은 유난을 떨며 자기 어머니를 모셔와서는 집안일을 도와주도록 했다. 나는 꼼짝도 못했다. 먹고, 음악 듣고, 영화 보는 게 일이었다. 여왕이나 다름없었다.

정아를 제왕절개로 낳았던 터라 둘째도 수술을 해야 했다. 아기가 너무 클까 봐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2년간 쉬던 때라 살찔 걱정도 없었다. 그해 연말 7.9파운드(약 3.6㎏)의 건강한 딸을 낳았다. 바로 카밀라다. 나는 약속대로 7캐럿이 넘는 블루 사파이어 반지를 선물로 받았다.

카밀라의 출산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원래 예정일은 다음해 1월 10일께였다. 하지만 내가 워낙 건강했고, 보석을 받을 욕심에 원 없이 먹었던 까닭에 의사는 12월 하순 무렵 출산해도 상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이왕 제왕절개로 낳는 것이니 12월 말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12월 30일로 수술 날짜를 정하고, 카밀라를 낳았다.

첫딸 정아는 가수로서 대목인 연말 공연을 하겠다고 당겨서 11월에 낳고, 둘째 카밀라는 세금 혜택 좀 보겠다고 앞당겨 12월에 출산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두 딸로부터 두고두고 ‘속물 엄마’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지금까지도 놀림 섞인 원망을 듣는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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