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럼>場外惡材 더 안나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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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직도 기업인들의 심기는 매우 불편한 것 같다.비자금 사건과관련해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감이 높다.여기에다 정국(政局)을 더 혼미하게 만드는 5.18특별법제정 문제까지 튀어나와 기업인들은 내년 사업계획을짜기가 어렵게됐다.
올 한햇동안 우리경제는 메가톤급 장외악재(場外惡材)로 시달려왔다.대구 지하철공사장의 대형가스폭발사고,충주호유람선화재,삼풍백화점붕괴사고에 이어 전직대통령을 구속으로까지 몰고온 비자금 사건,그리고 5.18특별법 제정문제등으로 경제가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올해 우리경제는 9%이상의 고속성장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이런 현상은 외국인의 눈에는 분명히 불가사의한 일로 비쳐질 것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30여년동안 역사적인 큰 사건,예컨대 두차례에 걸친 석유파동, 10.26대통령시해사건,5.18광주 항쟁등을 겪으면서도 고도성장을 거듭해왔다.잘 훈련된 노동력,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적극적 지원정책등이 3박자를 이룬 가운데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 적중한 것이다.문이 크게 열린 선진국시장을유리하게 공략했고 거기서 많은 이익을 거둬왔다.
운도 많이 따랐다.지난 10년동안 엔고(高)가 우리를 많이 도와줬다.경제적으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엔고가 발생,우리경제를 구원해 주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여기에다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적대국이었던 옛소련.중국등과 국교를 맺 고 경제협력을 확대한 것등이 우리경제에 큰 힘이 됐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호재(好材)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정국이 계속 불안하고 정책이 일관성이 없는데다 빈발하는 장외변수들이 경제를 흔들기 때문이다.잘 나가던 경제에 이런 변수들이 나타나 브레이크를 걸면 성장 추진속도는 일시 중단되거나 반감되곤 했다.그 틈을 이용,경쟁국인 대만.홍콩등은 더 멀리 앞서가고 중국등이 무섭게 돌진해왔다.자칫 잘못하다가는 외국 학자들이 비유적으로 말하는 「나는 기러기떼」의 순위에서 우리가 한단계 밀려날 지도 모른다.일본을 선 두 새로 해 그 뒤를 좇는 아시아의 네마리 용중 한국이 뒤로 밀려나고 중국이나 말레이시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다.
이번 비자금 사건이 그럴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사건으로 우리의 대외신용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국제신용마켓에서 설자리를 잃을 만큼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신용등급이 2~3단계씩 떨어져 해외자금조달조건이 까다로워 지고 있고,국제입찰이나 무역에서도 계속 밀리고 있다.다 된 계약이 취소되거나 보류되는 사례들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이를 만회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여기에다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는 사태가 생길 경우 그 파장은 더욱심각해질 것이다.
올해 20%가 넘는 높은 수출신장률에다 9%가 넘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고도 성장에 또다시 브레이크가 걸리게 됐으니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안정된 바탕위에서 이런 고도성장이 몇년간 지속돼야 한다.남북통일에 대비하고 통일후 적어도 10년간 투자를 계속해야경제의 안정된 틀을 잡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더구나 우리 주변을 둘러싼 경제환경은 결코 만만치 않다.안으로 는 비자금 파문의 후유증이 쉽게 가시지 않는데다가 정치계절이 앞에 놓여있고노사관계가 불안정한 상황이다.밖으로는 무한경쟁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년동안 우리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엔화(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엔고현상이 엔저(低)현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현재 달러당 100엔대가 120엔대까지만 절하돼도 우리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받게된다.그렇게 되 면 우리는 어떤 상품으로 외국제품과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이제는 외국기술을 복제해 수출하던 시대는 지났다.엔고덕에 덤으로 장사하던 그런 행운도 기대하기 힘들다.그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 길은 내부의 역량을 한층 키우는 방법밖엔 없다.그러려면 무엇보다 정치권이 달라져야 하고,정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비자금 사건과 관련,정경유착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재벌정책을 뜯어 고치려하는 그런 발상도 곤란하다.문제가 있는 것은 마땅히 고쳐야 하나 대기업중심으로 경제를 이끌어온 한국경제의 특성을 무시한 경직된 조치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이제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장외악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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