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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의료계 시장원리 도입 … 약일까 독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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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최근 의료 분야의 시장원리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 농촌 주민을 대상으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의료진. [중앙포토]

백수 청년 아담은 사고를 당해 무릎이 찢어진다. 그는 바늘과 실을 들고 상처 부위를 직접 꿰맨다. 치료비가 비싸 병원을 갈 수 없어서다. 목수 릭은 목재 절단기에 왼손 중지와 약지가 잘린다. 하지만 중지를 봉합하는 데 6만 달러, 약지는 1만2000달러의 비용이 든다. 고심 끝에 그는 약지를 택한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비싼 보험료 때문에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험을 다뤘다. 이를 통해 의료 서비스를 시장 기능에 맡긴 미국의 그늘진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의료 분야에 경쟁과 효율성 등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른바 ‘의료 산업화’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인터넷에서는 관련 괴담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의료체계에 시장논리가 개입하면 감기를 치료하는 데만 10만원이 들 것”이라는 식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공(公)보험 형태인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 산업화를 주장하는 이유와 반대 주장을 살펴본다.

◇현행 의료체계는=의료기관을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공익법인으로 규정한다. 즉 기업 또는 병원이 병원 안에서 번 돈은 병원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은 이윤보다 공익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민건강보험제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는 국가 주도형 국민건강보험제를 민간건강보험이 보충하는 방식이다. 1977년 도입된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 모든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를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라고 부른다.

◇‘의료 산업화’ 찬성론=병을 치료하는 의료 서비스가 시장 기능에 맡겨지면 의료 공급자인 병원들이 치열하게 서비스 경쟁을 하게 되고 소비자는 보다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이해종 교수는 “병원의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의료 질이 떨어질 뿐 아니라 국제 경쟁력도 뒤처졌다”며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현재처럼 진료를 받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려 3분 동안 진료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찬성론자들은 국가가 직접 나서 의료 서비스를 주도한 결과 방만한 운영과 비효율이라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의대 의료정책연구실 권용진 연구위원은 “정부가 의료 서비스를 민간과 나눠 제공하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사회보험의 원조인 독일과 국가 의료보장 체제를 운영하는 영국도 민간건강보험의 영역을 확대해 일정 부문을 민간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원리에 맡기면 의료 부문의 국제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의료 분야에 투자 자금이 몰려 고용 창출은 물론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가 자본을 의료 서비스에 필요 이상으로 투자해 경제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반대론=그동안 유지돼 온 ‘의료 공공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돈을 벌기 위한 자본이 의료 분야에 투입되면 자칫 돈의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비가 치솟아 ‘의료 양극화’를 가져온다는 비판도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의료 분야가 이익을 내려고 하다 보면 의료 소외계층이 늘어날 것”이라며 “주식회사형 영리병원은 ‘환자의 건강’이 아니라 ‘주주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은 지난 4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적은 비용으로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는 세계가 부러워한다”며 “미국과 유럽국가들도 한국의 건강보험제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반대론자들은 의료 분야에 시장원리가 도입되면 고용이 늘 것이라는 데도 부정적이다. 의료기관들이 이익만 좇을 경우 인원 감축을 통해 고용이 오히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들이 수익성이 높은 진료에만 집중할 경우 의료 질도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생각해 볼 문제=의료 서비스가 공공재인지 아닌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의료 서비스의 틀이 바뀌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건강권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이 강조된 현행 의료체계에서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해결할지 짚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건강보험료 재정 적자는 2847억원에 이른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지출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6.4%인 54조5000억원이다. 이는 2000년도 26조5000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시장원리가 도입되면 의료 소외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찬성론자들도 일정 부분 인정한다. 이 때문에 의료 산업화는 공공전문병원의 확대 등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호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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