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 중기 ‘환싸움’ 법정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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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시중은행의 환 헤지 상품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입은 수출 중소기업들이 손실 보전을 위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100여 개 중소기업 대표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비공개 긴급회의를 연다. 이들은 환 헤지를 하려고 시중은행의 통화 관련 파생상품인 키코(KIKO·Knock In Knock Out)에 가입했다가 환율 급등으로 손실을 본 기업인들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피해를 본 기업들이 정부·금융권의 결단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낼 것”이라며 “결의문 초안에 최악의 경우 소송도 불사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KIKO란 일정 계약기간 동안 환율 범위를 정한 뒤 실제 환율이 이 범위 안에 있으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지정환율로 외화를 팔아 환차익을 볼 수 있는 상품이다. 환율이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할 때 환 헤지와 함께 일부 환차익을 노리고 많은 기업들이 가입했다. 그러나 지정 범위에서 환율이 더 내려가면 계약이 무효가 되고, 환율 급등으로 범위 최고치보다 오르면 계약금액의 2~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지정환율로 팔아야 한다. 환율이 떨어지면 상관없지만 환율이 오르면 가입한 기업이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다.

피해 업체들은 손실액을 은행들이 일부 탕감해 주거나 분할 납부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 중기 관계자는 “주거래은행이 권유해 은행이 제시하는 환율 전망치를 근거로 KIKO에 가입했다”며 “환율이 떨어져도 손해를 안 본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환율이 급등할 때 위험성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이들 기업은 상품 약관이 일방적으로 기업에 불리한 만큼 불공정행위로 공정위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174개 중 65개사가 KIKO 상품을 이용했고, 이로 인한 순손실 총액이 85억5520만원에 달했다. 업체당 평균 1억3580만원꼴로 손실을 본 셈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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