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공부를 망치는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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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을 둔 엄마들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자녀를 ‘우등생’으로 만들기 위해 “옆집 OO는 밤잠도 안 자고 공부한다는 데 너는 뭐하냐” “내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성적을 이렇게 밖에 못 받아 오느냐” 윽박지르기 일쑤다. 그러나 “이같은 행동이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반기를 든 이들이 있다. ‘내 아이의 공부를 망치는 엄마 마음습관’을 출간한 박재원(45)·김경(44·여)씨를 만났다. 박씨는 학습법 상담전문가, 김씨는 두 아이(최준상·중대부고2, 민상·대청중 2)를 둔 대치동 주부다.


  박씨는 “학생 및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20여 년동안 깨지지 않는 법칙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자녀와 부모 사이에 대화가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Yes”라고 답하는 비율이 부모는 50%가 넘지만, 자녀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 양자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는 얘기다. 그들이 제안하는 ‘장벽제거’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사춘기 때부턴 감정싸움 치닫는다
  박씨는 “부모가 자녀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아이를 통제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잘라말했다. 그는 “10세 이전에는 ‘화’가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 이후, 특히 사춘기 때부터는 부모-아이간 감정싸움으로 치닫기 십상”이라고 조언했다.
  김씨는 “일단 화를 내기 시작하면 내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이가 대들기라도 하면 물건을 던지고 손찌검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이런 행동은 아이로 하여금 ‘엄마가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게 해 그때부터는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부는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하기 싫어 갈팡질팡하는 아이’의 예를 들었다. 책을 펴놓은 채 음악을 듣는 아이에게 “너 정신 못 차리구나. 때려치워”라고 다그치면, 아이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없어진다고 했다. 이들은 “이른 아침 출근해 인터넷뉴스를 보고 있는데, 상사가 다가와 ‘너 회삿돈 공짜로 먹으려 하냐’고 화냈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라”고 말했다.
 
과잉보호는 화(禍)를 부른다
  이들이 말하는 과잉보호는 ‘너는 공부만 해라. 나머지는 엄마가 다 해줄게’라는 사고방식. 박씨는 “이는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공부는 계획구상→임무착수→시행착오의 3단계를 거쳐 나아가는 것인데, 공부만 하라는 건 계획구상과 시행착오 과정은 빼고, 임무착수 단계만 거치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문제집선택, 채점까지 대신해주는 극성 엄마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그는 “시간절약을 한다지만 정작 아이들은 무슨 문제를 틀렸고, 왜 틀렸는지조차 모르면서 몇 점 맞았는지에만 신경을 쓴다”며 “축구선수가 중계방송만 열심히 본다고 실력이 향상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비교는 독(毒)이다
  1년에 200차례 이상 학부모 상담을 하는 박씨는 매번 “아이를 신뢰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다. “저도 그러고 싶죠. 근데 애가 다른 걸요.” ‘내 아이는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런 부모들은 ‘자극하면 뭔가 달라지겠지’라는 소망(?)을 담고 자녀를 공부 잘 하고 말 잘 듣는 아이와 비교하게 된다. 이는 오산이다.
  박씨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특정 상황과 능력만으로 비교하는 건 아이들의 의욕을 급격히 떨어뜨린다”고 강조했다. “A는 공부 잘하는 데 넌 만날 영화만 보냐?”가 아니라 “너는 영화제작을 하는 게 꿈이지? 그러려면 B대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는 게 좋겠구나.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우선 아닐까”라는 식으로 아이의 관심을 존중하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컷 비교해 놓고 ‘나중에 크면 내 마음 알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부모들의 착각”이라며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려면 대화를 자주 하되 아이를 한 인격체로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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