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Plaza]신선우 前 LG 감독 ‘만원의 행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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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26면

신선우

그는 지금쯤 새로 산 배낭을 메고 전라도의 어느 바닷가를 걷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지리산 자락 어디쯤의 작은 주막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일지도 모른다. 한국프로농구 최고의 명장으로 12년 동안 우뚝했던 신선우(52·사진) 전 LG 감독. 그는 난생 처음 맛보는 자유에 희열하며 낯선 곳을 열망했다. 평생 직업 같았던 농구를 그만둔 그의 요즘이 궁금했다.

 바람이 많이 불고 하늘이 흐렸던 7일 오후 신 감독은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왔다”며 전화를 했다. 그는 커피숍에서 크림이 듬뿍 들어간 카페모카 큰 잔으로 목을 축이며 기자를 기다렸다. 원래 검은 편인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더 새카맸다. 누군가 신 감독에게 물었다. “요즘 골프장에서 사시죠? 얼굴이….” 신 감독은 대답했다.

“골프 못 쳐요. 산에 다녀서 이렇게 됐어요.”

 농구 감독을 그만둔 그는 요즘 매주 친구들을 만나 산에 간다. 모교인 연세대·용산고 친구는 물론 감독을 하는 동안 못 본 친구들을 닥치는 대로 만난다. “새벽에 전철을 타고 약속 장소에 가죠. 낮에는 알아보는 분이 좀 계시지만 새벽이나 늦은 저녁엔 괜찮아요. 차비며 점심값이며 다 합해 만원이면 오케이입니다.”

 신 감독은 프로농구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이다. 원년(1997년)부터 2007~2008 시즌까지 한 번도 쉰 적이 없고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를 각각 세 차례 제패했다. LG에선 프로농구 감독 가운데 가장 많은 연봉(3억원)을 받았다. 그의 통산 승수(341승)는 2위(김동광·261승)보다 80승이나 많다. 그런 그가 올해 LG와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자 깨끗이 손을 털었다.

 ‘만원짜리 주말’에 재미가 든 신 감독에겐 새로 살 물건이 두 가지 있었다. LG에서 사용하던 승용차를 반납했으므로 새 자동차가 필요했다. 그는 이날 기아에서 나오는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을 계약했다. 새 배낭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꽤 큰 배낭을 지고 몇 주가 됐든 지방을 돌 생각이었다.

 “농구 감독을 하는 동안 마음의 빚을 많이 졌다. 농구만 하는 동안 내가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아내가 대신 다 했고 딸아이 둘은 고맙게도 잘 커주었다. 친구들은 내가 농구만 잘하면 된다면서 나의 개인적인 일까지 돌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갚아야 한다. 우선 일일이 만나 인사부터 해야겠다. 고맙다고.”

 신 감독은 “이제 농구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농구와 함께 살았고, 그래서 행복했다. 이제는 코트를 떠날 때가 됐다”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앞으로 난 20년 정도 더 살 것이다.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는 말도 했다. 프로농구 초창기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될 신 감독의 은퇴 선언은 자못 충격적일 수 있는데, 이상하게 세상은 조용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 감독이 정말 농구를 그만둔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능력이 남아 있을지 모르는 이 희대의 승부사를 농구계가 마냥 내버려둘 것으로 보기 어렵다. 언젠가는 신 감독의 가슴에서 새로운 의욕이 솟구칠지도 모르고. 그러므로 신 감독의 은퇴는 어쩌면 희망사항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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