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남자의 속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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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12면

『3xFtM 세 성전환 남성의 이야기』김성희·조혜영·루인 함께 엮음, 그린비 펴냄, 1만2000원.『남편이라는 것』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구계원 옮김, 열음사 펴냄, 1만원.『548일 남장체험』노라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1만1000원.『남자는 다 그래』에릭 헤그만 지음, 장혜경 옮김, 펀북스 펴냄, 7800원.

지하철 옆 자리 중년 부인의 전화기가 울린다. 액정에는 ‘그 남자’라고 떠 있다. 의혹의 눈길로 흘끔 쳐다본다. 그런데 아니다. 대화 내용을 엿들어 보니 ‘그 남자’는 애들 아빠, 남편이다.

‘아내는 여자가 아니다’거나 ‘가족인 아내와 섹스를 하는 건 근친상간이다’는 우스개가 나돌기도 한다. 일본에는 ‘일과 섹스는 집안에 들이지 않는다’는 농담이 있나 보다. 하지만 여자들에게도 남편이 그런 무성(無性)적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는 『남편이라는 것』(열음사)에서 짐짓 자상한 척,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넓은 마음과 인내심으로 남편을 배려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 말에 수긍당하기보다는, 유년기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통렬하게 분석한 명저 『남자의 탄생』(전인권 지음, 푸른숲)에서 진단한 ‘동굴 속 황제’ 증후군이 떠오른다.

이번 달에 ‘남자’에 관한 책이 여러 권 출간됐다. 『남편이라는 것』말고도 『유부남이 사는 법』(마르셀로 비르마헤르 지음, 문학동네), 『남자들의 거짓말 사전』(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3xFtM 세 성전환 남성의 이야기』(조혜영 외 엮음, 그린비)가 나왔다. 이 책들의 홍보 자료에 유독 ‘슬픈 초상화’ ‘슬픈 자화상’ 같은 문구가 자주 눈에 띈다. 남자가 뭐 그리 슬픈 존재라는 건가.

『3xFtM 세 성전환 남성의 이야기』는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자가 되고 싶은, 아니 남자인 사람들 이야기다. 이 책에서 한무지씨는 어떻게 해야 남자로 보일지 몰라서 대놓고 여자를 무시한다든지 하면서 ‘꼴마초’처럼 행동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게 남자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전환자라는 거울에 비춰본, 남자들의 일그러진 초상화다.

한씨는 그러나 성전환자 인권 활동가로 일하게 되면서 이른바 ‘남근 선망’에 대해,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됐다. 아이스크림도 31가지 중에서 고르라는 시대에 성만 반드시 둘로 나누어져야 하나, 생각했다.

동성애자 남성이 들려주는 남자 이야기 『남자는 다 그래』(에릭 헤그만 지음, 펀북스)도 남자에 대해 생각지 못했던 정보를 담고 있다. ‘같은’ 남자면서도 여자처럼 남자에게 ‘당하는’ 남자라는 독특한 입장에서 자기와 주변 사람들의 사생활을 르포처럼 헤집어낸 이야기는 눈물 나게 우스꽝스럽다.

안정적인 성생활을 하는 남자들도 따로 자위를 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신속하게 끝내버리고 싶기 때문에”, 남자들이 콘돔을 거부하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의 생각뿐일 때 최단 시간 내에 목표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에” 등 남자들의 본성과 격식 차린 문명의 좌충우돌 일화는 단지 저자 의 유머 감각만으로 코믹해진 건 아니다.

이렇게 전통적 의미의 남자 아닌 남자가 들려주는 남자 이야기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은 『548일 남장체험』(노라 빈센트 지음, 위즈덤하우스)이다. 레즈비언이며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남자들의 삶 속에 잠입해 보통 여자들은 결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연기 지도와 발성 코치, 분장사의 도움까지 받아 1년 반 동안 완벽한 남장 생활을 하면서 남성 전용 클럽에서부터 세일즈맨 교육소, 맞선 파티, 수도원 생활까지 차례로 체험한다.

그러고 난 후에 남성 비판적 페미니스트였던 저자는 스스로도 놀랄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남성 공동체 내의 과묵하고 위계적인 질서에 편입되고 싶어 안달복달하고 끔찍한 욕망의 배설구인 스트립 바에 몇 주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오히려 남자들의 세계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동정하게 된다.

그리고 남성 체험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이 여성들과의 데이트였다고 술회한다. 전통적인 남성과 현대적인 남성 사이 균형을 잡기가 몹시 어려웠고 여성들의 적개심과 남자가 나쁘다는 죄책감에 눌려 감정적으로 기진맥진했다. 한동안 비이성적으로 여성들이 싫었다. 남성의 권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여성의 ‘싫어요’ 한마디로 입힐 수 있는 손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가 남자로서 세상과 여성들과의 밀고 당기기 끝에 얻은 깨달음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남자들은 강력한 갑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빌린 옷이고 열 사이즈는 크며, 그 갑옷 안에는 벌거벗고 불안정하고 아무도 안 보기를 바라는 가련한 몸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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