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과 주말을] '낀세대' 70년대생의 청춘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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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첫경험
김종광 지음, 열림원, 356쪽, 1만원 

1990년대는 이전보다 나아졌다지만 아쉬웠다. 90년대 학번은 데모 좀 했다지만 386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었고, 신세대라 불렸지만 통통 튀지 못한 낀 세대였다. 어쩌면 어중간했던 90년대. 소비에트가 몰락하고 대학생은 쇠파이프에 맞아 죽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는 동안에도 청춘은 대책 없이 어영부영 흘러갔다.

청춘군에 있는 청춘대학교 문학과엔 71년생 90학번 곰탱이 있다. 아들의 유학 길, “네가 데모하는 날이 이 애비 눈에 흙 들어가는 날인 줄 알면 된다”는 농사짓는 아버지의 준엄한 당부는 열흘을 채 못 갔다. “대학생 집회 명칭은 짧은 꼴을 볼 수 없다”는 말마따나 ‘합의 없는 일방적 고지서 발부 철회와 재단 전입금 확보를 위한 낙혈인 규탄대회’처럼 장황한 각종 시위에 부대끼는 대학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시한 대학생답지 않은 데모인데다 곰탱의 신념마저도 단단치 못했다.

“데모를 가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전경들과 종일 다투다 보니 뭔가 큰일을 했다는 만족감도 맛볼 수 있었고, 뒤풀이 때 술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투쟁의 신심도 없이 그러고 다닌다는 것이 곰탱을 괴롭게 했다.”

물렁한 곰탱은 데모 대신 자취방에 모여 밤새 술 마시고 고스톱 치며 시간을 보냈다. “이십 대는 첫경험의 날들이어야 한다”며 술집 서빙, 당구장 닦돌이, 노가다판 잡부를 전전하며 아르바이트 세계도 섭렵했다. 물론 버는 족족 술값과 외상값으로 날려버렸지만. 의경으로 복무하면서는 민자당 사무실을 지킨다고 건너편 슈퍼에 죽치고 앉아 ‘민자당을 해체하라고, 우루과이라운드에 결사 반대한다고, 김영삼은 물러가라고’ 외치는 시위 구호를 따라 흘러가는 시간을 목격했다.

전역한 곰탱 앞에 획기적으로 변한 세상이 펼쳐졌다. 386컴퓨터로 소설을 끼적거리고, 입시학원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쳤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포르노를 써서 돈도 벌었다. 이렇게 3당 합당으로 시작한 90년대가 흘러 97년이 되었다. 곰탱은 졸업을 하고 청춘군을 떠난다.

작가는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곰탱을 내세워 90년대와 70년대 생의 청춘을 추억한다. 등단 10년을 맞는 그가 『경찰서여, 안녕』 등 전작에서 단편적으로 그려왔던 것들의 총체다.

“『첫경험』은 어느 농촌 소도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느 70년대생들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며, 문학제도 진입을 꿈꾸는 자의 욕망을 다룬 하나의 습작기이기도 하고, 학교와 경찰서를 중심으로 여러 부조리한 대중들이 90년대를 통과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가 말하는 소설의 테마는 무려 네 가지. 그 내용의 무게감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일단 책을 펼쳐라. 작가의 능청스런 입담에 낄낄거리다 자지러질 터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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