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아부의 기술, 마키아벨리한테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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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여우는 아첨의 상징으로 가장 자주 꼽히는 동물이다. 그림은 구스타프 아코프 칸톤의 ‘경건한 르나르’. ‘르나르’는 프랑스 우화에 등장하는 영악한 여우다.

아첨론
윌리스 고스 리기어 지음, 이창신 옮김
이마고, 296쪽, 1만2500원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훌륭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스듬히 누워 TV 리모컨만 눌러대도 되는 주말에 신문을 읽을 리 없다. 참으로 지적 열정(?)이 있으신 독자다.

만약 이런 낯 간지러운 말이 듣기 싫다면 그 또한 훌륭하다. 아첨을 경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첨을 경계하는 이들도 은근히 또 다른 아첨을 즐기는 거라면 어떨까.

이 책은 말한다. “아첨을 경멸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의 그런 점을 칭찬하는 것도 결국 아첨이다.” 어떻게 해도 아첨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이런 반어적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일리노이대 출판부장을 맡고 있다. ‘당신이 써먹고 싶을 아첨의 아포리즘’이라는 책 광고 문구처럼 처세술을 다룬 실용서와 각종 경구를 담은 인문서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했다. 이런 식이다. 먼저 ‘생활의 지혜’를 제시한다. 아첨하는 사람이 연습해야 할 여섯 가지 기본은 위생, 취향, 친근함, 신중함, 사전조사, 타이밍이란다.

“칭찬을 하면서 구취를 풍기거나 눈에 띄게 침을 튀기면 김이 샌다” “세력가라는 사람은 명목상일 뿐 실세는 그 아랫사람인 경우가 많다” “작별인사 할 때 상대가 거듭 되새길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을 하라” 등의 조언이 그럴 듯하다.

권력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첨꾼이 할 수 있는 열 가지도 제시했다. ^눈에 띄게 부지런히 일하라 ^권력자를 본받아라 ^일이 순조로우면 권력자의 천재성을 축하하고, 안 풀리면 헌신적으로 조언하겠다며 권력자를 안심시키라 등이다.

책의 묘미는 여기에 마키아벨리가 등장한다는 데 있다. 글쓴이는 “아첨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산으로 올라간 마키아벨리와 그 군주를 기억하라”고 한다. 아첨을 하려면 어떤 지점에서 상대방이 귀를 기울일지 세심히 측정한 마키아벨리를 배우라는 얘기다. 철학적인 면도 있다. 글쓴이는 스스로를 더 즐길 수 있다며 “나의 최대 적이 바로 나라면 화해하고 나에게 아첨하라”고 한다. 뜬금없이 고대 그리스 일곱 현인 중 한 명인 비아스의 말도 인용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동물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누군가 묻자 이렇게 말했다는 거다. “길들지 않은 짐승 중에는 절대군주이고, 길든 짐승 중에는 아첨꾼이다.”

하지만 정작 책을 다 읽고 나면 도대체 뭐가 아첨인지 헷갈린다. 글쓴이는 ‘보상을 기대하는 칭찬’뿐 아니라 온갖 감정과 행위에 아첨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치장은 얼굴에 하는 가장 노골적인 아첨이고, 스스로의 잘못을 탓하면 내 양심에 아첨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시, 편지, 뉴스 기사, 역사, 법, 정치도 다른 사람에 대한 아첨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남용되는 아첨은 “사랑해”다. 이런 아첨은 상대의 단단한 수비를 꺾어버린다. 역사상 유명한 커플인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도 아첨의 향연을 벌이며 애정을 나누었다지 않은가.

저자가 정한 128개의 아포리즘이 들쭉날쭉한 것은 단점이다. 아첨과 관련된 명언이 나온 맥락에 대한 설명이 없을 때도 많다. 요즘 같은 거친 시대를 살아갈 구체적인 조언이 많을 거라 기대했다면 말장난만 하는 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랴. 이 책의 목적 자체가 아첨에 대한 아첨인 것을. 원제마저 이렇다. 『In Praise of Flattery』.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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