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 탈출' 족집게 과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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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주택.사업자금 명목으로 8880만원의 빚을 진 신용불량자 鄭모(39.여.자영업)씨는 이달 초 신용회복위원회(이하 신용위)의 문을 두드렸다가 뜻밖의 조언에 힘을 얻었다.

묵직한 목소리의 상담원은 '혹시나'하던 鄭씨에게 '재무 컨설팅'까지 해줬다. "주택자금대출 4000만원은 20년 상환이고 이자도 싸니까 스스로 갚는 게 유리합니다. 사업자금으로 빌린 4880만원은 개인워크아웃제(개인신용회복지원제도)를 활용하면 8년간 한달에 65만6000원씩 좋은 조건으로 갚을 수 있습니다."

조언에 힘을 얻은 鄭씨는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월 200만원의 소득을 쪼개 월 28만여원과 65만여원 등 93만여원씩 갚아나가고 있다.

다단계 판매로 3000여만원의 은행 빚을 진 金모(25.회사원)씨는 이달 초 "올해 말까지 도저히 빚을 줄일 수 없다"며 신용위에 하소연했다. 상담원은 "빚을 진 은행 세 곳을 찾아가 '꼭 갚을 테니 이자를 줄여주고 상환기간을 늘려 달라'고 부탁하라"며 은행의 자체 신용회복지원제도를 이용할 것을 권고했다.

월 150만원의 수입에 연체 경력이 없던 金씨는 "한달 뒤 평균 연이자 25.8%가 12%로 줄어들고 4년 동안 천천히 빚을 갚게 됐다"며 기뻐했다.

鄭.金씨에게 희망을 준 상담원들은 시중 은행.종합금융사에서 지점장.상무이사 등으로 일하던 금융계 전직 임원들. 비영리 사단법인인 신용위에서 '상담전문위원'자격으로 전화상담 자원봉사에 나선 이들의 '족집게 조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 명으로 시작한 전문위원 제도는 신불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11명으로 늘었다가 지난주엔 9명이 추가로 합류해 모두 20명이 됐다. 이들은 일반 상담원 29명과 함께 하루 1000여명의 상담전화를 받아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 상담을 거쳐 희망을 찾게 된 사람들이 손수 만든 빵을 들고 찾아오는 등 감사표시가 잇따르고 있으나 위원들은 "마음만 받겠다"며 사양하고 있다. 지난달 말 현재 전국의 신용불량자는 380만여명.

전문위원 1호는 1998년 경남은행 지점장으로 은퇴한 김철(60)씨. 하루 30~40명씩 지금까지 모두 1400여명을 상담해왔다. 그는 "수고비는 교통비와 식대가 고작이지만 우리의 조언으로 단 한 명이라도 더 재기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화은행 상무이사를 지낸 전수남(62)씨도 지난 18일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은행에서 이사로 재직할 땐 기업체 사장 등 VIP만 상대했던 그는 "한 아기 엄마가 카드빚 1000만원에 울먹이며 전화했기에 '젊으니까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는데 콧등이 시큰하더라"고 밝혔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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