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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딜레마’에 빠진 MB노믹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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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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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노믹스’가 딜레마에 빠졌다. 사상 유례 없는 고유가 때문이다. MB노믹스의 핵심은 성장이다. 그러자면 높은 원-달러 환율과 저금리가 받쳐 줘야 한다. 그러나 고유가로 물가가 치솟자 이를 더 밀어붙이기 어렵게 됐다. 민간 연구소들의 하반기 경제 전망은 암울 일색이다.

정부 일각에선 자성론도 일고 있다. 너무 조급하게 성장 일변도 정책에 집착하는 바람에 부작용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딜레마는 크게 세 가지다. 유류세·환율·금리. 이를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임기 초반 MB노믹스의 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유류세 인하=경유가 휘발유만큼 비싸지면서 산업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유류세를 내리라는 요구도 봇물 터진 듯 쏟아지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도 29일 유류세를 내려달라는 건의서를 지식경제부에 제출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최인기 통합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교통세를 인하하고 주행세를 인상해 보조해 주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류세 인하를 완강하게 거부하던 기획재정부 입장에도 변화가 보이고 있다. 재정부는 이날 “인하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그간의 입장에서 반 발짝 물러섰다. 재정부는 그간 “국제적으로 경유가 휘발유보다 더 비싼데 우리만 세금을 내려 경유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기름값이 오를 때 유류세를 내려봤자 소비자들이 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렵고 세수만 줄어든다는 이유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초 유류세를 10% 내렸지만 그뒤 기름값이 급등하면서 흔적도 없어졌다”며 “당시 유류세 인하는 패착”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정부가 방향을 살짝 틀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은 물가 불안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경유 소비자들의 불만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정부 스스로 휘발유값과 경유값 비율을 100대 85까지 맞추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혀 쓰고 남은 돈이 상당하다는 점도 정부엔 부담이다.

◇환율 딜레마=원-달러 환율을 낮춰 고유가 충격을 덜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2005~2006년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에서 90달러대까지 뛰었지만 고유가 충격은 작았다. 환율이 달러당 900원대 초반에 머물면서 우리 경제가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원화가치를 높여 고유가 충격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부 관계자는 “당시 환율을 올려 유가 충격에 견디도록 경제 체질을 바꿔놓지 못한 후유증이 막심하다”면서 “저환율로 고유가를 덮으면 지금은 좋겠지만 몇 년 못 가 경제가 거덜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도 환율을 낮춰 달란 요구를 무작정 묵살할 형편이 아니다. 지난 몇 달간 성급하게 환율을 끌어올린 결과 가뜩이나 비싼 유가와 수입제품 가격이 더 올랐기 때문이다. 급기야 27일 정부는 대규모로 달러를 풀어 환율을 끌어내리기도 했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이 단기간에 오락가락하면서 시장에 혼란을 불렀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 요구할 수 있을까=강만수 경제팀의 금리 인하 요구 목소리는 사라졌다. 인플레이션이 예상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수입물가는 한 해 전에 비해 31.3%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되레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메릴린치는 최근 “글로벌 경제가 인플레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경제성장보다 인플레가 더 우려되고 있다”면서 “한국은행이 향후 금리를 1%포인트까지 인상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았다.

강 장관은 한때 “직장을 잃는 게 좋으냐, 용돈이 조금 줄어드는게 좋으냐”고 했지만 더 이상 물가 문제를 한가한 걱정으로 돌릴수 없게 됐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금리를 내릴 경우 더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를 낮춰 실물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시도는 당분간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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