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대통령 벌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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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살리나스 멕시코 전대통령은 지난 3월 멕시코 산업계 거물인 한 친구의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했다.그 6개월전만 해도 그는 「20세기 가장 탁월한 멕시코대통령」으로 불렸다.하버드대 출신의 이코노미스트였던 그는 과감한 민 영화와 개방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북미자유무역협정을 성사시켰고 세계 일류화를 목표로 선진국들의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실현시켰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엔 애덤 스미스.케인스.마키아벨리가 항상 공존했다.
독재권력을 휘두르고 1천여 공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거액을 챙겼다.기업들의 팔을 비틀고,마약왕들과 정치권의 유착도 눈감아주었다.후임인 세디요대통령은 그가 후계자 로 지명해 대통령에 당선시킨 인물이다.그러나 취임을 전후해 고조된 정치불안과 페소화(貨)위기로 세디요는 전임자 살리나스에게 등을 돌렸다.
살리나스의 처남인 집권당 사무총장은 암살되고 형은 전 대통령유력후보의 암살을 지령한 혐의로 체포됐다.마약집단과의 부패고리에 수사가 착수되면서 처남의 동생인 전법무차관이 미국에 빼돌린2천만달러의 예금도 드러났다.
그는 지방 한 민가에서 단식으로 결백을 주장하다 결국 망명길을 택했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당한 경우는 더러 있지만 전직 대통령이 재임중의 일로 구속된 사건은 전례가 없다.
대통령 벌주기는 삼권분립체제에서 권력균형게임의 양상을 띤다.
74년 미국의 닉슨대통령 탄핵은 특별검사제도 때문에 가능했다.
의회가 독립된 특별검사 임명을 요구하고 닉슨이 이를 받아들였기때문이다.
전직 벌주기엔 국민여론,그리고 현직과의 함수관계도 무시하지 못한다.「비자금사건」을 「부정축재사건」으로 서둘러 성격규정한 데서 검찰수사의 방향을 읽는다.마피아를 통한 이탈리아 정계의 비자금은 연간 수십억달러 규모라고 한다.총리를 여 섯번 역임하고 40여년간 총리메이커를 도맡아온 자가 그 주역이고 사법부마저 매수돼온 것으로 드러났다.
고질적인 관행과 대선자금에 대한 일반의 의혹을 묻어둔 채 전직대통령 한사람의 단죄만으로 새시대는 기약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의 고민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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