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쌍용차 매각 왜 표류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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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였던 중국 란싱그룹의 오락가락하는 행보에 쌍용차 매각작업이 다시 표류하고 있다. 란싱은 29일 오전 국내 주간사인 네오플럭스를 통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3월 25일 상실했다는 서신을 채권단의 주간사인 삼일Pwc로부터 받았으며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쌍용차 인수를 포기한다는 공식 선언이었다. 그러나 란싱은 오후에 돌연 처음 배포한 보도자료를 취소하고 이번 협상의 실무 총책임자였던 한국계 수전 조 부총재 명의의 해명자료를 다시 돌렸다. 협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골자였다. 이 바람에 채권단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금융계 전문가들은 "인수능력에 대한 철저한 검증없이 비싼 값만 부르는 상대를 우선협상자로 정해 독점적인 협상권을 주는 현행 매각방식의 한계가 드러났다"며 차제에 협상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수능력 논란=란싱그룹의 총 매출액은 지난해 1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매출액이 3조4000억원에 이르는 쌍용차의 절반도 안된다. 더욱이 란싱은 화공전문그룹으로 자동차사업 경험이 짧다.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의 자동차 정비.부품 업체 28개사를 인수해 군용차량의 수리.정비를 해본 것이 전부다.

이 때문에 협상 초기에 란싱의 인수능력을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중국 국영기업은 사실상 정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정부 승인만 받으면 인수능력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정부는 중국 내 1, 2위 화공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을 란싱그룹이 모두 인수토록 했다. 인수작업이 완료되면 란싱의 자산은 2000억위안(약 30조원)으로 중국 3위 화공그룹이 된다. 란싱은 이 과정에서 쌍용차를 인수해 자동차사업을 그룹의 중심축으로 키우려 했다는 게 채권단의 설명이다.

◇미숙한 채권단=채권단은 우선협상대상으로 란싱그룹을 정하면서 2순위 협상대상에 같은 중국의 국영기업인 상하이기차집단공사를 내정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두 업체가 가장 높은 가격을 써냈고 국영기업이기 때문에 인수능력에도 하자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 국영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증거라고 말한다. 중국의 국영기업은 철저하게 정부의 통제하에 있기 때문에 한 곳이 다른 한 곳보다 높은 가격을 써낼 경우 반대편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란싱이 막판에 거부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채권단이 정한 하한선보다 낮은 가격을 써낸 것도 결국 반대편의 견제를 의식한 중국 정부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협상의 틀 고쳐야=전문가들은 비싼 값을 써내는 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해 독점적인 협상권을 줄 경우 인수자가 우위에 서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지적한다. 채권단은 란싱이 막판에 가격을 깎자고 나오지 못하도록 최종 제안가격을 최초 제시가의 상하 15%로 못박는 제어장치까지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란싱 측이 하한선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근거가 없었다.

숙명여대 강인수 교수는 "부실기업에 돈이 묶인 채권단 입장에서는 비싼 값에 사겠다는 쪽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지만 기간산업일 경우는 산업 전체를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할 때도 가격 이외에 기업 운영능력과 장기적인 비전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경민.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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