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과부 ‘촌지성 세금’ 파문 … “모교나 자녀 학교 가라” 권장 공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특별교부금 나가니까 스승의 날(5월 15일)을 전후해 학교에 많이 다녀오세요.”

6일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실·국장회의에서 한 국장은 김도연 장관과 간부 20여 명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특별교부금은 지금까지는 장·차관이 학교를 방문할 때 관행으로 주는 격려금이었다. 실·국장들이 모교나 자녀 학교를 방문하고 돈을 주도록 한 것은 역대 정부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김 장관이나 간부들 누구도 이런 제안을 반대하지 않았다.

교과부의 한 국장은 “간부들이 학교를 방문해 500만원씩 건네면 체면도 세우고 생색도 낼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교육정책을 이끄는 교과부의 집단적인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 장관이나 간부들 모두 원칙 없이 ‘나랏돈을 퍼주는 일’이 얼마나 국민에게 상처를 주는 일인지를 모르는 불감증에 빠졌던 것이다.

◇집단적인 모럴 해저드=6일 실·국장회의에 앞서 간부들은 ‘우리부 직원 학교 방문 추진계획’이란 공문을 모두 읽은 상태였다. 공문에는 6일부터 16일까지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모교와 자녀 학교를 중심으로 방문 학교를 선택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박백범 대변인은 “간부들의 학교 방문을 독려하기 위해 추진 계획을 세웠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여기다 실·국장회의에서 예산 지원까지 한다고 발표하면서 간부 7명이 16~22일 학교를 찾아간 것이다.

일곱 명 중 다섯 명은 모교를, 두 명은 자녀 학교를 찾아갔다. 중2 아들 학교에 찾아간 박융수 장관 비서실장은 “방과 후를 이용해 중3생들에게 쇠고기 수입 등에 관한 특강을 세 시간 했다”며 “아이를 잘 봐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춘란 학술연구지원관은 스승의 날 직후 고2 딸 학교를 찾아갔다. 박 국장을 만난 E고 관계자는 “박 국장의 모교가 지방이어서 딸 학교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도서 구입비 명목으로 증서를 받았다가 되돌려줬다”고 말했다.

◇뒤늦게 고백한 김 장관=26일 오후 1시30분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16층 교과부 장관실. 김 장관이 예정에 없던 간담회를 자청하고 기자들을 만났다.

고민에 찬 모습이었다. 김 장관은 “실·국장들이 방문한 학교는 7곳인데 자녀 학교도 있었다. 모교 방문이 비난받을 소지가 있는데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 학교를 방문한 실·국장 두 명 중 한 명은 내 비서실장”이라고 공개했다.

김 장관은 23일 간부들 중 일부가 자녀 학교를 방문한 사실을 보고받았다. 언론에서 문제 제기를 한 다음날이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이날 유감 표명만 했을 뿐 교과부 간부들의 그릇된 학교 방문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24일 토요일에 긴급 실·국장회의를 소집한 뒤 사과문을 냈지만 자녀 학교 방문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김 장관은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밝히는 것”이라며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인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간부들의 학교 방문 계획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김 장관은 “(간부들의 학교 방문이) 27년 된 행사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교과부의 관행에 묻혀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는 “교수 출신인 김 장관이 관행이라는 간부들의 보고만 믿고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며 “물의를 빚은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홍준·백일현 기자

교육과학기술부 간부들의 ‘나랏돈 퍼주기’ 어떻게 …

▶4월 16일 : 김도연 장관, 서울 용산초등학교 방문… 2000만원 증서 전달

▶4월 21일 : “스승의 날 전후로 학교 방문해 자율화 실태 점검하자”(실·국장회의) →특별교부금 지원 논의 없었음 →방문 대상 학교는 모교, 자녀 학교 중 선택

▶5월 6일 : 고위 간부 “특별교부금 지원되니 더 많이 가도록 하자”(실·국장회의)→김도연 장관 배석, 찬반 논의 없어→간부진 방문교 특별교부금 지원은 현 정부 처음

▶5월 13일 : 박종구 2차관, 모교인 충암고 방문해 1000만원 도서 구입비 등 증서 전달

▶5월 16일 : 우형식 1차관, 모교인 대전고 방문해 1000만원 도서 구입비 증서 전달

▶5월 21일 : 박융수 장관 비서실장, 아들 학교인 서울 S중 방문해 특강 뒤 500만원 증서 전달

▶5월 22일 : 언론, 교과부 간부 학교 방문 국고 지원 문제 제기

▶5월 23일 : 이명박 대통령, 김도연 장관 질책

      교과부, “실·국장 4명이 모교 방문해 증서 전달” 인정

      사과문 대신 “사회적 물의 유감”만 발표

      김 장관, 간부 2명 자녀 학교 방문해 500만원 증서 전달 확인

▶5월 24일 : 김 장관, 휴일 실·국장회의 소집한 뒤 “사과” 발표

      간부 2명 자녀 학교 방문은 함구

▶5월 26일 : 김 장관,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 자청

      “자녀 학교 방문 간부 2명 있다” 고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