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연금 5년 넘은 수치 여사 사이클론 정국에 또 발 묶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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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얀마 군정에 의해 만 5년이 넘도록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사진) 여사가 자유를 얻을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고 AP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사이클론으로 황폐해진 민심이 수치 여사를 구심점으로 정부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군부의 조바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얀마 군정은 2003년 5월 수치 여사에 대한 가택연금 조치를 내린 이후 매년 이를 연장해 올해로 만 5년째 그를 가둬 놓고 있다. 통신에 따르면 미얀마 현행법상 보안사범은 영장이나 재판 없이 인신을 구금할 수 있고, 이 조치는 1년마다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보안사범에 대한 인신구금이라도 최대 5년을 넘길 수는 없다. 수치 여사의 경우 24일 밤 12시에 만 5년의 가택연금 기간이 종료된 상태다. 그러나 군정 측에서는 그의 가택연금 해제와 관련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니얀 윈 대변인은 “군정이 수치 여사 석방 문제와 관련해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AP 등 외신들은 “수치 여사가 지닌 정치적 파급력 때문에 그녀의 가택연금 기간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얀마는 현재 사이클론 나르기스 때문에 7만7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해 군정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수치 여사를 풀어 줄 경우 미얀마 정국은 극도의 혼란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게 군정 지도자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미얀마 군정은 나르기스가 남부 지방에 닥쳐 온 다음 날인 3일 수치 여사의 자택 주변 경비를 강화했다. 지난해 9월 미얀마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수백 명의 승려가 수치 여사의 집 밖에 모여든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수치 여사는 1945년 미얀마 독립운동 지도자인 아웅산의 셋째 딸로 양곤에서 출생했다. 15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88년 4월 귀국해 반독재 시위에 참가했고 같은 해 9월 NLD를 결성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내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과 해제를 반복하고 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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