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즐거운 천자문] 사운드·스케일·스토리…조용필 공연 빛낸 3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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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동안 중계차 안에서, 지금은 무대 앞에서 간혹 느끼는 거지만 조용필 콘서트는 종교집회랑 엇비슷하다. 영적 부흥회를 방불케 한다. 십자가나 염주 대신 풍선과 형광봉을 양손에 든 ‘신도’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교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잃어버린 뭔가를 기어이 되찾겠다는 다짐으로 객석에는 퍼런 긴장마저 감돈다.

쉽게 만날 순 없다. 제단 앞엔 표범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이윽고 고행을 마친 수도자처럼 그 분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일시에 마법에 걸려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모두 시름의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피가 돌기 시작하고 표정은 살아난다. 40년 팬은 40년 전으로 돌아가고, 20년 팬은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주민번호 따위는 필요 없다. 오늘은 모두 청춘이다.

대중은 전통적으로 의리 없는 집단이다.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변심을 일삼는다. 환호하고 갈채를 보내다가도 하등 거리낌 없이 시선을 돌린다. 충성의 유효기간은 스타의 ‘당분’이 남아 있는 ‘당분간’일 뿐이다. 기억은 남을지 몰라도 죄책감 따위는 애당초 없다. 하. 지. 만. 여기서는 안 통한다. 조용필을 향한 사랑과 우정은 세월마저 무색하다. 그들에게 약속은 결속이다. 조직의 이름마저도 ‘영원히’(eternally)다.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큐’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무대가 배처럼 관객 쪽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동무대가 자신들을 향해 가까워올 때마다 청춘을 복제하려는 아우성들로 신음에 가까운 절규가 곳곳에서 메아리쳤다. 40년을 버틴 ‘청춘의 신’에게 수혈 받기 위해 수많은 손들이 별빛 아래 출렁거렸다.

항공모함처럼 큰 무대에 가수는 시종일관 단 한 명이었다. 과연 몇 곡을 혼자 부를까 카운트하려 했으나 이어지는 노래의 물살이 그 계획을 무산시켰다. “여러분이 즐겁고 행복해야 제가 기쁨과 보람을 얻습니다.” 진심 어린 고백이 5월의 그라운드에 지진을 일으킨다. 40년 공연을 마친 후 그는 적어도 40시간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자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조용필 공연에는 이른바 ‘3S’가 있다. 사운드(sound), 스케일(scale), 그리고 스토리(story)다. 24일 40주년 공연도 그 기대감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구상은 원대했고 준비는 꼼꼼했다. 가창과 연주는 장중했고 무대와 조명은 화려했으며 서정과 서사는 절절했다. ‘꿈’으로 시작하여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로 끝난 2시간 반의 대장정에는 함께 살아온 친구들의 꿈결과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축제는 끝났지만 한밤의 소풍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흥분은 넘쳐도 갈등은 없었다. 레퍼토리엔 빠졌지만 5만 송이의 ‘일편단심 민들레’는 잠실벌 안팎을 꽃 향기로 가득 채웠다. 돗자리를 깔고 여기저기서 사이다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내일의 근심은 없었다. 바닥은 축축해도 눈빛은 촉촉했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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