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자 내각이라 민생 위기 못 느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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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기름값에 서민경제가 멍들고 있다. 휘발유값보다 높아진 경유값 탓에 경유 트럭을 굴려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가는 야채상이 장사에 손을 놓고, 물류의 중추 역할을 하는 화물차가 멈춰섰다. 치솟는 물가에 서민 주부의 장바구니는 갈수록 가벼워지고, 자고 일어나면 동네 음식점이 하나둘씩 문을 닫는다. 민생이 소리없이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보듬겠다고 출범한 이 정부는 일언반구 아무런 말이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각종 민생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열린 17대 마지막 국회는 무익한 미국산 쇠고기 논란만 벌이다 회기를 마쳤다. 서민은 날로 피폐해지는 살림살이를 어디에 하소연할 데조차 없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고통을 당하는 게 서민층이다. 경기 후퇴기에 정부가 가장 세심하게 보살펴야 할 계층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어찌된 일인지 서민들이 겪는 일상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물가가 오르면 오르나 보다, 기름값이 뛰면 뛰는가 보다’ 하며 아무런 대책도 내놓질 않는다. 하다못해 서민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시늉조차 없다.

정부는 현실로 닥친 오일쇼크에도 그저 꿀먹은 벙어리 모양 묵묵부답이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국내 기름값의 상승이 불가피하다면 그에 따른 장기적인 대비책과 함께 단기적인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게 아닌가. 야채트럭이 멈춰서고 화물연대가 파업에 나설 때까지 팔짱만 끼고 기다리겠다는 것인가. 사실 경유값 급등으로 인한 서민 계층의 피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생계형으로 운행되는 자동차의 대부분이 경유차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에너지 세금을 조정할 때 경유값을 휘발유값의 85% 선에서 맞추겠다며 경유 세율을 올렸었다. 그런데 국제 경유값이 급등하면서 국내 경유값이 휘발유값에 근접하다가 급기야 최근에는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다면 경유 세율을 더 낮추든지, 아니면 생계형 경유차에 한해 보조금을 주든지 하는 단기적인 충격 완화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또 경유값 부담을 한없이 덜어줄 수 없다면 경유차의 구조 변경이나 폐차, 해당 종사자의 업종 전환과 전직 등을 포함하는 중장기 대책을 함께 마련했어야 했다.

문제는 이 정부가 이런 민생 현안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부자 내각이라 그런가. 경제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데 정부는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결국 터지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겨우 깨닫는 식이다. 민생의 피폐와 정부의 무관심이 계속되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걷잡을 수 없는 사회 불안의 잠재적 불씨가 될 소지가 크다. 쇠고기 파문은 시간이 가면 가라앉을 수 있지만 민생이 무너지면 감당할 수 없는 파장이 일어날 수 있다. 작금의 민생 불안은 본격적인 위기의 전조(前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