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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중견기업] 우리 라이벌은 루이뷔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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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고운세상네트웍스 안건영 대표가 진료실에서 미용피부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일반 기업은 예뻐지게 해주고 살 빼주겠다고 광고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똑같은 서비스를 하는 병원은 광고를 하면 안 됩니까?”

서울 호텔신라 내 고운세상클리닉에서 만난 안건영(43·피부과 전문의) 고운세상네트웍스 대표의 첫 마디는 이랬다. 그는 자신을 ‘질병 치료가 아니라 미용 피부과를 표방하는 의사’라고 소개했다. 사업의 목표가 일반 미용기업들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병원만 ‘병원광고금지’ 규정에 묶여 다른 경쟁 미용기업들과 제대로 경쟁할 수 없다고 불평했다.

그는 “우리의 경쟁상대는 국내의 다른 피부과 병원이 아니라 루이뷔통”이라고 했다. “200만원으로 루이뷔통 가방을 살지, 동남아 여행을 갈지, 아니면 레이저 치료를 받을지를 놓고 고민하는 게 요즘 여성들인데 병원만 손발이 묶여 답답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질병만 의료로 인정하는 과거 패러다임이 국내 의료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꽉 막힌 국내 의료규제를 피해 성장동력을 해외진출에서 찾고 있다. 2004년 말 중국 상하이에 중외합자의료기관인 루이리미용성형의원을 냈고, 6월엔 미국 부자들이 모여 사는 베벌리힐스에 ‘더 지(The G)’라는 레이저&스파 병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교포가 아니라 패리스 힐튼이나 빅토리아 베컴과 같은 유명인과 주류사회를 겨냥한 메디컬 스킨케어 병원이다. 안 원장은 “미 전역에 ‘더 지’ 브랜드를 단 100개 이상의 네트워크 병원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미국을 자주 다녀보니 미용피부과 분야만큼은 한국이 더 경쟁력 있더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 대표의 브랜드 병원 네트워크는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출발했다. 서울 돈암동 고운세상클리닉에서 출발해 현재 21개 병원을 거느린 고운세상네트웍스로 키워낸 것이다. ‘김○○ 피부과’ ‘이□□ 성형외과’식으로 의사 이름을 딴 병원이 아니라 ‘고운세상’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서비스를 차별화한 게 마케팅 포인트였다. ‘환자=고객’이라는 철학으로 밸리트 파킹 서비스를 하고 고객을 맞는 서비스 코디네이터를 따로 뒀다.

안 대표는 “개원 초기만 해도 동료 의사들에게서 ‘의사 권위를 깎아먹는다’는 얘길 들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시도했던 것들이 병원의 기본 서비스가 됐다”고 말한다.

네트워크 병원에 대한 아이디어는 일본에서 얻었다. 1991년 일본 준텐도 의대 유학 시절, 일본의 많은 브랜드 병원과 앞선 서비스를 보면서 남들보다 일찍 눈을 뜬 것이다.

안 대표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바로 중국 진출 당시였다. 당시 한류 열풍으로 중국인들이 한국 드라마 속 연예인들의 고운 얼굴선과 피부에 매료돼 고운세상은 쉽게 중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상하이 위생국에서 합자로 병원을 내자며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개원 초 비싼 가격 등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예컨대 현지 의사들과 한국 의사들의 코 성형수술 비용이 다섯 배나 차이가 나다 보니 병원을 찾았다가 그냥 돌아간 사람이 더 많았을 정도다. 중국인 현지 의사를 고용해 중간대 가격의 의료서비스도 해 나가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그는 “의사의 일생을 보면 30대 중반에 개원해 40대에 활발하게 일하다 50대에 기운 떨어지기 시작하면 병원도 같이 무너진다”며 “나는 안건영이 아닌 고운세상이라는 브랜드로 영원히 남는 영속적인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안혜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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