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기쁨 <63> 키안티 클라시코의 자연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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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36면

중세 마을 ‘카스텔로 디 아마’에서 생산되는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카스텔로 디 아마’.

직업상 다양한 와이너리를 방문할 기회가 있는데, 깊은 인상이 남는 곳의 하나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마을 ‘카스텔로 디 아마’를 꼽고 싶다. 숙박과 저녁식사가 해결되는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농촌체험 관광 프로그램)를 이용한 덕분에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찬찬히 둘러보고 시음까지 해볼 수 있었다. 아마는 피렌체에서 차로 1시간 거리, 해발 500m에 위치한 와인 산지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가 550m니까 그에 필적하는 고지(高地)인 셈이다. 여름엔 매우 시원해 피서지로 적당해서 으리으리한 별장이 늘어서 있다. 비수기에는 불과 열대여섯 명밖에 살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이곳에서 이탈리아 와인의 1, 2위를 다투는 메를로 ‘빈야 라파리타’와 ‘키안티 클라시코’가 생산된다.

‘카스텔로 디 아마’는 마을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상품명이기도 하다. 아마는 ‘키안티 클라시코’에 해당되는 와인으로 고급스러운 품격을 자랑한다. 같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명 와인 ‘카스치아(casuccia)’나 ‘벨라비스타(Bellavista)’와 자주 비교된다. 아마는 베이직한 키안티 클라시코로 숙성을 필요로 하는 카스치아나 벨라비스타에 비해 가격은 3분의 1이고 일찍 마실 수 있다.

필자가 백화점 와인 매장의 매니저로 일할 때 카스텔로 디 아마의 양조가 마르코 팔란티가 매장을 찾아온 적이 있다.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잡지 ‘감베로 로소’에서 해마다 한 명밖에 뽑지 않는 ‘그 해의 최우수 양조가’로 뽑힌 인물이다. 마른 체구에 키는 1m70㎝쯤 될까. 우아한 샤토 오브리옹을 사랑한다는 그는 언동이 부드럽고 차분했으며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와인 양조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우리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비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미미합니다. 항상 테루아르와 기후에 경의를 표하며 와인을 만들 뿐이죠”라고 말했다. 겸손한 대답에 감동한 필자는 그가 어떤 밭, 어떤 양조장에서 와인을 만드는지 궁금한 마음에 실제로 찾아가기에 이른 것이다.

카스텔로 디 아마 키안티 클라시코를 만드는 포도밭은 전형적인 역암질로 이루어져 있다. 배수가 잘 되는 메마른 땅이라 포도나무가 물을 찾아 뿌리를 깊이 내리므로 튼튼한 나무로 성장한다. 일반적으로 아마의 키안티 클라시코는 장기 숙성형으로 젊을 때는 단단하다고 한다. 이는 미네랄과 유기산이 풍부하게 함유된 포도로 만들어 와인의 산도가 높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해에 만든 아마의 와인 세 병을 시음해 봤다. 기후가 온난했던 1999년은 탁월한 빈티지다. 씹히는 듯한 몇 종류의 체리, 질 좋은 산지오베제(키안티를 만드는 포도 품종)의 순수하고 깊은 맛, 여운으로 역암질 토양에서 오는 미네랄이 느껴진다. 2000년은 무더운 해였다. 풍부한 일조량은 포도 색깔을 진하게 만들어 주었고, 더운 날씨는 포도를 잘 여물게 해줘 색깔이 짙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풀보디 와인이 되었다.

2001년산은 1999년산과 나란히 위대한 빈티지인데 기후 자체는 약간 서늘한 해였다. 셋 중에 가장 젊은 탓도 있지만 포도가 서서히 익었기 때문에 채소, 특히 녹색 채소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과일 맛의 밸런스가 매우 좋으며 순진한 소녀처럼 티 한 점 없이 맑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지적이고 복잡한 맛을 더해 갈 것이 분명하다. “우리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비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미미합니다.” 팔란티의 말을 깊이 새기며 천천히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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