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엄마가 뿔난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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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19면

올해 65세의 엄마와 친구들이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다녀왔다. 인터넷에서 영화를 추천받기 어려운 그녀들은, 가장 만만한 자식(주로 막내들)들을 다그쳐 볼 만한 영화들을 추천받았나 보다. 각종 할리우드 로맨스는 일단 아웃.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자유분방함과 호들갑이 싫다”는 게 이유다.

‘인디아나 존스 4’는 개봉 전이었고, ‘아이언맨’은 엄마 세대들이 싫어할 거라고 지레짐작한 자식들이 추천하지 않아 그녀들의 선택에 끼지 못했다. 선택의 폭은 둘 중 하나였는데 ‘국민손자’ 유승호가 출연하는 ‘서울이 보이냐’는 검정 치마, 흰 저고리에 책보 둘러매고 다니던 시절이 떠올라서 밀어 놓고, 그녀들이 고심 끝에 고른 영화는 ‘비스티 보이즈’였다. 흰 머리 소녀들의 엉큼한 속셈이 상상된다. 누가 소개해 줬을까? 윤계상의 만지고 싶은 ‘식스 팩’ 가슴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며칠 전 엄마와의 식사 자리에서 물었다. “재미있었어?” 일상에서의 쇼킹한 경험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의 엄마가 어쩐 일인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그런 영화가 다 있니? 내내 졸다 나왔다.” “…?….” 윤계상의 가슴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들의 부유하는 청춘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지친 나이였던 걸까? “무슨 영화가 내내 대사가 욕뿐인지 재미 하나도 없더라. 졸다가 ‘이 XX놈’ 하면 깜짝 놀라 깨고, 또 잘 만하면 ‘이 XX’ 해서 깨고.” 이제, 알겠다. 엄마와 친구들의 모처럼 만의 극장 나들이를 망친 요인은 ‘욕’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엄마의 과장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자격이 없다. 다만 미뤄 짐작할 때(근간의 한국 영화들을 보면서 나 역시 느낀 바) 대사 속에 욕이 제법 등장했던 것 같다. 65년 동안 세상의 모든 힘든 모습을 봐 온 그녀들이 참고 듣기에도 싫을 만큼 과격하고, 비행기 조종사들이 통신 끝에 붙이는 ‘오버’ 멘트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남자 등장인물들이 욕설을 뱉는 풍경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건 꼭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평범한 대화 속에서 욕을 후렴구로 붙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운전할 때, 혹은 술 마실 때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점잖은 사람들의 농담 같은 욕은 실제로 유머 감각 있게 들릴 수 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절친하고 그런 종류의 유머 감각에 공감대를 갖고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함께 있는 나이 어린 후배, 혹은 당신의 옆 테이블에 앉은 누군가는 당신의 농담 같은(?) 욕설 때문에 어금니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자들만 보는 백과사전이 있어서 ‘남자답다’의 정의에 ‘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이라고 써 있기라도 한 걸까. 신사다운 매너는 상대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기분 좋은 언행을 할 때만 가치가 인정된다. ‘짐승의 자식’이라는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대체 ‘Cfoot놈’은 ‘좋은 놈 나쁜 놈 수상한 놈’ 중 어느 부류에 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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