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타민] 도로 소음 측정 직접 나선 판사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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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3일 오후 서울 왕십리에 있는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임채웅 부장판사와 이수진·한지형 판사가 나타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 판사들인 이들은 이곳에서 소음 측정 실험을 했다. 재판부는 미리 녹음해 온 소음의 음량을 45데시벨(㏈)에서 80㏈까지 차근차근 높여 가며 실외 소음이 어느 정도 돼야 실내에서도 참을 만한지 체험했다.

그러곤 재판부는 KTX 열차가 인근으로 지나는 노량진 한강변 A아파트로 자리를 옮겼다. 임 부장판사 등은 소음측정기를 들고 A아파트의 1층과 꼭대기층 등 여러 집을 돌며 직접 소음을 들어보고 측정값을 기록했다. 재판부는 소음 측정치를 공개하진 않았다. 현재 환경기준치는 건물 5층까지는 실외 소음 65㏈ 이하, 건물 5층 이상부터는 실내 소음 45㏈ 이하로 제한돼 있다.

이날 현장 검증은 서울시와 노량진 한강변 아파트 주민들 간 도로 소음 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재판부가 실제 도로 소음의 심각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됐다. 법원이 도로 소음을 직접 측정하기 위해 현장 검증에 나선 것이다. 국내에선 최초다. 감정서 수치에만 의존해 판결을 내리던 관행에서 벗어나겠다는 취지다.

소음으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당사자들이 소음을 측정해 재판부에 제출하면, 감정치를 토대로 재판부가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임 부장판사는 “소음 사건은 모든 사건 현장이 다 달라서 체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판결을 하기 전이라 미리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 현장 실험이 판결 선고를 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법원은 현장 검증에 적극 나서고 있다. 19일 부산고법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뇌물 수뢰 사건에서 국세청을 방문해 폐쇄회로(CC)TV에 찍히지 않고 국세청을 드나들 수 있는지 검증했다. 3월에도 서울고법 판사들이 편의점 절도 사건 현장 검증을 나가 여성용 팬티스타킹을 직접 뒤집어 써본 뒤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지 실험해 눈길을 끌었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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